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언론에 보도된 노무현 前대통령의 유서 전문이다.
원래 정치라는 게 진보와 보수, 개혁이니 수구니 떠들지만
'그들만의 리그'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좋고 나쁨도 없는 그저 無관심이었단 말.
기득권을 지키려 나라 팔아먹는 다른 정치인들 보다 조금 나은 사람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물론, 이번에 검찰 출두하면서 "인간은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실망이 아니었고 단지 오래된 지론의 '확인' 정도 였다.
오늘 문득 인터넷을 하면서,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한 것은 충격이었다.
그의 죽음 그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이..내 안에서 정리되고 정의되어져야 할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이렇게 그저 그런 정치인정도로 그를 기억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내가 그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대학선배가 가방에서 노무현 책을 꺼내더니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란다. 그 책의 표지에서 그의 얼굴을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난 "노동자 같이 생겼다"고 말한 것이 흥분하며 소개해주는 그 선배에게 해준 나의 유일한 감흥이었다.
그리고 본 책이 아마 3년전 즈음 읽은 유시민의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였을 것이다.
언론에 관심이 있던 터라 읽었던 책이었는데,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참 무모하고 외로운 싸움에 뛰어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야 돌아보니 조선일보가 싫어진 거도 이때부터고, 노무현을 다시 보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나 보다.
이라크 파병이니, FTA니..진보들에게도 매를 맞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보수들에게는 매일매일 욕을 먹었으니 "대통령 못하겠다"는 말도 나온 것 아니겠나. 나는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그에게 남몰래 정을 주고 있었나?
하지만 내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것은..그가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부터다. 물론 당선 초기 진보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법관출신'이지 않은가? 하면서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연과 학연으로 똘똘 뭉쳐진 파괴할 수 없는 이 사회의 거대한 벽을 경험하고 부터는 그가 제법 대단해 보인거다. 고졸출신의 대통령. 서민들도 할 수 있다는 ... 물론 그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되면서 이러한 의미는 퇴색되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진보도 보수도, 또 양쪽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그를 예의주시했다.
그는 정신적 지주이자, 정적이자,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평범한 시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더 기대를 걸기도 하고,
더 경계를 하기도 했다.
사상가로서의 재도약을 기대하거나, 경계했다.
그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것이 개혁이었는지..진보였는지..잘 모르겠지만,
그가 '태풍의 눈'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은.. 그것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에 의해서,
적나라하게 그 치부가 들어났다. 태풍은 급격하게 약해졌고...그도 약해졌다.
유서에서도 밝혔지만, 그는 매우 힘들어 했다.
그런데 보통의 유서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억울한 것에 대한 내용보다는 '미안함'이 많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치부때문에 태풍의 위력이 쇄약해지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
자신의 안위나...자신의 명예...도 중요했겠지만,
그는 아마 자신을 둘러싼 태풍의 주역들에게 더 미안했으리라.
보이는 태풍, 보이지 않는 태풍, 오늘의 태풍, 미래의 태풍..
그는 그 태풍의 휘몰아침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자기때문에 받을 고통들에 대해서 더 괴로웠던 것이다.
그는 태풍이 죽지않도록,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의 죽음이 수놓은 자연의 한 조각이, 태풍을 움직이는 힘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겠는가.
죄없는 시민들을 죽인 대머리 학살자도 당당하게 천수를 누리고 있는데,
그의 양심과 사상은, 매우 서민적이라서...
태풍의 순수성과 운동성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2009. 5. 23. 태풍의 눈 노무현을 기리며. 꿈터 편집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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