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초상화라 한다. 흔히 알려진 ‘얼굴’의 어원은 얼꼴. 얼, 즉 마음의 골, 마음의 모양이 드러난다 하여 얼굴을 얼굴이라 했다 한다. 마음이 얼굴이 되기 전, 그러니까 얼꼴 원형을 있는 그대로 그려주는 초선영 씨를 만났다. 정식 명칭은 ‘내면 초상화’라 한다. 3년간 2,000명에 가까운 이들의 얼꼴을 그렸다.

사진=김승범


   
# 눈과 눈

처음 시작은 초상화와 같다. 눈과 눈을 마주하고, 상대를 보는 것이다.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눈과 눈의 교감이 시작된다. 그러니 눈이 빛나는 사람이 유독 좋다 한다. 그것이 동족(?)을 판별하는 기준이란다. 이런저런 대화도 주고받는다. 몇 마디만으로,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고, 불편한 사람도 있다. 그런대로 교감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해주실래요?”

시간이 멈추는 순간이다. 바쁜 일상에 휩쓸려, 시간에 저당 잡힌 이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언제, 이렇게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을까? 시공간을 초월하는 내면 여행인 셈이다. 온전하게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찰나! 그때, 얼꼴이 드러난다.




# 마음과 마음

“피에로.”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예뻤던 어느 아가씨였다. 자기를 표현하는 단어를 ‘피에로’라 했다.
“직업이 비서라 했어요. 그래서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어야 한다고요. 슬플 때에도 웃어야 하니, 자기가 피에로 같다 했어요.”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
마음대로 표정 지어도 좋아요.
지금까지 지어온 미소들이
당신대신 웃음 지어줄 거에요.

자신이 피에로라고 느낄 정도라면,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웃음과 기쁨을 선사했을 것. 그러니 슬플 때, 슬픈 표정을 지어도, 지금까지 지어온 미소가 여운이 되어, 일부러 웃음 짓지 않아도 웃는 얼굴로 보일 거라는 응원을 담았다. 

이렇듯 모든 그림에는 초선영 씨와 손님들의 이야기가 있다. 얼과 얼이 만나는 순간의 기록이다. 


# 사람과 사람

2,000개에 가까워지는 그림의 수만큼, 이야기도 늘어난다. “아! 이 그림은요…” 무심코 바라보는 그림 한 장 한 장, 그 사연을 일일이 기억하여 말해준다. 만남을 소홀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리라. 

“간혹 부정적인 단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어낼까 고민해요. 모든 것은 양면이 있으니까요. 이분은 ‘어둠’이라고 자기를 표현하셨어요. 이유 없이 우울하고, 축축 쳐진다고요.”
초선영 씨는 자기의 가장 우울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어둠이 가슴 깊이 밀려왔을 때를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별을 본다.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견하려면
어둡게 모든 빛을 제거하여야.
칠흑 속 빛나는 나의 빛

얼굴이 아닌, 얼을 그리는 사람. 그녀는 알 것 같았다. 
 
-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요? 
“생명체요. 살아 움직이고, 바뀌고, 느끼는 것도 많고, 물처럼 다양하고….”
 
죽은 듯 회색빛의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얼은 아직 살아 있구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인터뷰 후기 > 인터뷰 중 나는 내 내면초상화를 그려달라 요청했다.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당황하는 초 선생님. 지금 생각해보면 무례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그려달라니. 나중에 오픈마켓으로 오면 그려준다 하셨으니, 다음을 기약한 것이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꿈을 붙잡고 있을테니 조금 늦게 찾아가도 되지 않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약함악함을 솔직하게 드러낸 그의 일기장때문에…
윤치호에 푹 빠진 키노시타 타카오 씨


“한국에는 윤치호와 관련된 기적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것을 알고도 일기를 공개한 유가족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방대한 자료를 윤치호가 ‘친일파’임을 밝히는 데만 사용한 한국학계이죠.”


키노시타 타카오 ⓒ김승범

 
도쿄의 한 도립고등학교에서 40년간 영어를 가르쳤던 키노시타 타카오(65)씨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윤치호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일상에 지친 그에게 윤치호가 남긴 일기 11권은 일종의 은신처였다. 잠들기 전에 한두 시간씩 일기를 읽고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은퇴 후, 윤치호에 대해 더 제대로 알고 싶어 한국에 왔다. 공부할 곳을 찾아다녔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흔쾌히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찾은 곳이 숭실대 기독교학과였다. 윤치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학’을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지도교수인 박정신 교수는 <윤치호 일기>의 일부를 번역하기도 한 터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키노시타 씨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됐다. 정확히 4년 전의 일이다.

지도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일본인 할아버지가 와서는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없기에 다른 큰 학교의 교수님을 소개해줬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는지 거절을 당해서 다시 돌아왔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공부하자고 했죠.”

4년이 지난 지금, 키노시타 씨는 올 8월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신민회에 대한 연구로,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는 큰 성과를 냈다.(박스기사 참조)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자취방을 찾았다.

“여름이라 방에 벌레가 많습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다. 젊은 시절부터 한국어에 관심이 많아, 소설을 즐겨 읽었다. 윤치호와의 인연도 광화문 서점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윤치호 일기> 국역본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키노시타 타카오 ⓒ김승범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왜 하필이면 윤치호였나요? 그는 ‘친일파’ 아닌가요?
“윤치호를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너무 분명했어요. 친일파에 대해서 왜 연구까지 하느냐는 거였죠. 한국에는 윤치호와 관련된 기적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것을 알면서도 일기를 공개한 유가족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방대한 자료를 윤치호가 ‘친일파’임을 밝히는 데만 사용한 한국학계이죠.”

<윤치호 일기>는 권당 약 300~350쪽 분량으로 총 11권이다.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은 물론,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 신앙에 대한 고민이 발견된다. 한문, 한글, 영문으로 되어 있는 그의 일기는 현재 3권까지만 번역되어 있다. 자신만 아는 암호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일기 전체를 읽지 않고는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윤치호 연구가 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다. 일부 연구자들이 확인되지도 않은 그의 ‘자결설’을 사실인 것처럼 적어 유포한 게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현실이다.

윤치호가 기독교인으로서, 조선의 회복과 근대화를 꿈꾼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후반으로 가면서 ‘노골적인’ 친일을 보였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추앙했다는 평가도 있고요.
“윤치호는 당시 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조선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국 학자들이 윤치호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나쁜 예로 언급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나 사실 당시 일본 측이 느끼는 존재감을 고려하면 그만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스케일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일제가 사회 참여적인 기독교 세력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꾸민 ‘105인 사건’에서도 결국 유일한 희생자는 윤치호 한 명뿐이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의 윤치호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가 무조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에 저는 한국에서 윤치호 전도사가 되려고 합니다.”

키노시타 타카오 ⓒ김승범



키노시타 씨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모두 윤치호 때문이다. 윤치호를 통해 접한 기독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윤치호는 자신의 약함과 추악함을 일기에 그대로 적어나갔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요.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하나님 앞에 서요. 그런 진실한 모습이 다 일기에 쓰여 있어요. 기독교가 이처럼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것을 용서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종교라면, 누구나 믿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약하고 못된 자신을 다 털어놓는 그의 일기는 저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 직접 한국에 와서 본 기독교의 모습은 어땠나요?
“목사님들이 모두 말끔한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부르주아의 종교가 아닌가, 지식인들의 종교가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고요. 여기저기 많은 교회를 소개받아 다녀봤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네요.”

그는 이번 여름, 일본에 돌아가 <윤치호 일기> 일본어 완역본 출판 작업에 들어간다. 유명 출판사와의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완역본이 나오게 됐다. 키노시타 타카오 씨의 20여 년 열정이 일궈낸 결과다.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정체된 한글 완역본 출판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키노시타 씨는 자신이 윤치호를 접하고,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윤치호가 만났던 그 하나님이 인도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아직 ‘기독교인’이 아니다. ‘믿음’을 결단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게 많다. 담배도 그중에 하나라는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헤어질 때 이렇게 인사한다.

“다음에 올 때는 내가 ‘기독교인’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쉽게 믿고, 쉽게 버리는 이 시대에, 그의 오랜 고민과 갈등을 응원한다.


※ 윤치호는 누구?
18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1897년 서재필, 이상재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1989년 제2대 독립협회 회장이 되었다. <독립신문> 사장과 만민공동회 회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1911년 105인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친일행위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친일파’로 낙인찍혔다.



 

 

국사 교과서 바꿀 충격적이고 치밀한 연구

<윤치호 일기>는 1883년 1월 1일에 시작해 1943년 10월 7일에 끝나는 60년의 긴 기록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1906년 7월 4일부터 1915년 12월 31일에 이르는 약 9년 반 동안에는 어떠한 기록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 기간의 정중앙에 바로 ‘105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연구함으로써 일기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게 키노시타 타카오 씨의 목적이었다.

논문 제목은 ‘105인 사건과 청년학우회 연구’. 지금까지의 신민회 연구가 회고록이나 당시의 경찰, 검찰의 자료를 기준으로 진행되었다면, 키노시타 씨는 여기에 복심법원 공판경위서나 일본 측 자료를 이용해 더욱 객관적인 신민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결론적으로 신민회는 ‘105인 사건’을 날조하기 위해 쿠니토모 및 총독부가 ‘청년학우회’에 덧씌운 이름이었음을 밝혀낸다. 사회 참여적인 평신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청년학우회가 신민회의 원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정설로 굳어 국사 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1907년 조직된 거대한 항일 비밀 결사’라는 표현과 회원 수가 800여 명이었다는 등의 설명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신민회 연구의 권위자를 비롯해, 이 논문의 심사를 맡은 외부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키노시타 씨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학술대회와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지도교수인 박정신 교수는 “한국인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일본인이 직접 찾아와 연구해주어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권정 경희대 교수도 “충격적이면서도 치밀한 연구”라며 “연구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논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글·인터뷰 / 이범진 편집장
키노시타 타카오씨의 논문은 꿈꾸는터에서 곧 출판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부산에 사는 수아 엄마입니다. 희망옹달샘 희승이 기사를 보고 마음에 부담(?)이 와서 오래 생각하고 기도하던 중 수아 아빠에게 용기 내어 얘기했더니, 수아 아빠도 감동을 받더군요. 그래서 얼마 되지 않지만 수아를 위해 모아놓은 100만원을 헌금할까 합니다. 시어른, 친정 식구들이 수아 낳을 때 주신 돈과 여러 어른들이 옷 한 벌 사주라고 주신 돈을 지금까지 모은 것입니다. 사실 수아에게 사주고 싶은 것도 많고 미래를 위해 종잣돈으로 모으고도 싶지만, 수아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헌금하고자 합니다.”


월간 <편지> 앞으로 도착한 한통의 메일이다. ‘희망옹달샘’ 캠페인을 통해, 선천성 무과립세포증을 앓는 희승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수아 엄마가 힘들게 모은 돈을 헌금한 것이다. 딸 수아를 위해 아끼고 아껴왔던 마음이 고스란히 희승이에게 전달됐다. 

올해로 5년째인 이 캠페인은 희귀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다달이 소개하고 있다. 직접 찾아가 그들의 어려운 상황부터 새겨듣는다. 독자들과 기도제목을 공유하기도 하고, 후원금을 요청하기도 한다. 매월 1만 5천 부씩 발행되는 <편지>를 통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끼리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손바닥만 한 <편지>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 첫 번째 기적

 

설지원 팀장 ⓒ김승범

 
진실 된 내용을 담기 위해 캠페인을 이끄는 설지원 팀장이 직접 취재에 나선다. 아무리 멀어도 직접 만나서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 이렇게 그녀가 만난 아이가 벌써 이번 달로 52명이다. 아이들 수술 날짜가 정해지면 여기저기 전화로 기도부탁을 하고, 직장 동료들에게도 기도메모를 건넨다.
지금은 이런 일들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몸살이 났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도 힘들었고, 그런 아이를 기르고 있는 어머니의 아픔을 듣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 저를 더 힘들게 했어요. 한동안은 취재하고 돌아오면 몸살이 났어요.”

 



그러다 취재를 하고 나서도 몸이 아프지 않게 된 건 “그저 들어주고, 그 내용을 진실 되게 담아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인정한 후부터”라 한다. 무책임해진 게 아니다. 사랑을 실은 <편지>가 마음을 울렸는지,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더는 몸살도 걸리지 않았다. 설 팀장의 몸이 체험한 첫 번째 기적이었다.


# 두 번째 기적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후원금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역부족이라고 생각할 때면 몸이 또 시름시름 아파진다. 2년 전 폼페병으로 고생하는 일곱 살 대희를 만나고 왔을 때도 그랬다. 대희는 온몸 중에 유일하게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었다. 집안 형편도 너무 어려워 후원금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또다시 몸이 아파올 것만 같았다. 꾹 참고 진실을 담아 기사를 썼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러자 두 번째 기적이 찾아왔다.

“대희의 기사가 실린 <편지>가 출간된 후, 여러 곳에서 대희를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기사로 연이 닿아, 대희는 CBS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에 출연했어요. 그것도 어린이날 특집이었지요.”
대희는 방송을 통해 1,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다. <편지>에도 많은 후원금이 들어왔다. 기적이었다. 사실 이때의 진짜 기적은 따로 있었는데, 모든 과정을 지켜본 대희 아빠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 세 번째 기적

   
설 팀장은 한 달에 한 번 깊은 고민에 빠진다. 소개할 아이들은 많은데, 원칙상 한 명씩만 취재하기 때문이다. 누가 더 위급한지, 가정 형편은 어떤지 따져보기도 했지만, 다들 절절한 사연들이라 쉽지가 않다. 가장 속 편한 방법은 신청한 순서대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간 어머니는 오히려 다른 병실의 아이를 소개해준다. “우리 아이보다 옆의 병실 아이가 더 심각해요”한다. 자기 아이의 상황과 가정 형편도 좋지 않으면서, 옆 병실의 아이까지 걱정해주는 어머니들을 만날 때면 설 팀장은 힘이 난다. 이처럼 자신의 상황도 어려운 사람들이 <편지>에 소개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느 날 세 형제가 입원한 병원을 방문한 어느 목사님이 그곳에서 <편지>를 읽어주었다. 형제들은 모두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병에 걸려 있었고, 몇 달 전 어머니도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이후였다. 그곳에서 목사님이 읽어주는 희귀병 아이의 사연을 들은 형제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아낌없이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세 번째 기적이었다.
“나중에 이런 사연을 희망옹달샘 주인공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시더라고요. 희망옹달샘 후원금은 이렇게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후원과 순종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 배불리 먹고도 남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성경의 대표적인 기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기적이 있다. 바로 떡과 물고기를 싸들고 예수를 찾아온 꼬마의 ‘마음’이다. 혼자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픈 사람과 더 배고픈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았다. 이게 오히려 더 큰 기적이 아닌가. 

딸을 위해 힘들게 아껴온 돈을 내놓은 수아 엄마, 옆 병실의 아이를 더 걱정해주던 엄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에 걸린 세 형제가 바로 오병이어의 주역이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을지 몰라도, 그들에겐 그게 전부였다. 그 마음에서 <편지>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편지>는 지금까지 52명의 난치병 아이들을 도왔다. 52번의 기적을 경험한 셈이다. 아무리 큰 강도 시작은 작은 옹달샘이라고 한다. ‘희망옹달샘’이 큰 강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글=이범진 기자
사진=김승범 기자

 

<편지>의 기적에 동참하고자, 3월 희망옹달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13살 은지는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입술이 새파래졌고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호흡조절이 어려워지자 뇌가 산소로 공급되지 않았고,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증상이 5년 내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은지는 매일 네 차례 약을 먹습니다. 일어나자마자 갑상선약과 위장약 3알, 오전 8시에 15알, 오후 4시에 5알, 밤에 11알씩을 먹습니다. 어머니는 은지를 꽉 짜면 약물만 나올 거라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은지의 식사는 케톤 식이요법으로 해야 합니다. 양념 하나 없이 기름에 볶은 고기를 하루 세 번, 3년간 먹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는데 우리 아빠는 은지가 이걸 안 먹는다고 떼를 쓰면 같이 먹어요. 정말 입맛에 안 맞는데 맛있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오빠들도 은지 앞에서 과자나 다른 음식들은 일절 안 먹어요. 저희 식구는 저만 빼고 다 너무 착한 거 같아요. 저는 나쁜 역할만 하거든요. 저희는 밥을 먹을 때 은지 때문에 방문을 닫고 먹어요. 근데 밥을 먹다가 은지가 문을 활짝 열잖아요. 그러면 바로 얼음이에요. 서로 눈치를 보기도 하고 은지에게 미안해서 시선을 돌리기도 하고…. 그때 제가 ‘은지, 네 방에 들어가! 당장!’ 하고 소리를 지르면 은지는 울면서 나가요. 저희 이렇게 살아요. 못된 엄마랑 너무나도 사랑 많은 이들과 함께.”

이번 달 병원비도 400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지원받는 병원비는 달랑 2만원뿐입니다. 고달픈 생활에 은지 어머니는 “은지랑 내가 죽어야 끝나지. 같이 죽을래”라는 말을 자주 하셨답니다. 그때마다 은지 아버지는 “우리 은지 걷는 거 너무 신기하지 않아? 난 희망이 쑥쑥 자라나는데 말이야. 당신 아프지마. 나도 안 아플게. 은지 나을 때까지 우리 아프지 말자. … 은지 나으면 우리 그때 아프자”라며 위로합니다. 은지 가정을 도와주실 분은 아래의 방법으로 그 사랑을 전해주세요.

- 후원계좌 : 국민은행 (143001-01-002659, 사회복지법인 토기장이세상)
- 전화번호 : 1544-4099 (토기장이 <편지>)
- 이메일 : t-media@hanmail.ne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만화그리는 조대현 목사님을 인터뷰했습니다.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버리고,

교회 개척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인들을 소중히 여기고,

새 신자 한 사람이 정말 귀하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누가 저에게 교회를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당장에 이 교회를 추천할 것입니다.

'6억 연봉 목사'를 언급하는 기사를 썼다가, 교회측에서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4억이라는 겁니다. 나머지 2억은 목사님 이름으로 나가는 경조사비라는 거지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염치가 없어진 교회의 현실에 기가 찹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사로 대답을 대신 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고액연봉 버리고 교회 개척한 사연>

제발 부끄러움을 알고, 정신들 차리시길.





 

조대현 목사님 ⓒ 김승범 기자님




고액연봉 버리고 교회 개척한 사연
『개척교회는 재미있다』 저자 조대현 목사 인터뷰
 
 
최근 『개척교회는 재미있다』를 펴낸 조대현 목사(조인교회)를 만났다. 고액연봉, 성추행, 재정비리 등으로 대형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 때에, ‘개척교회가 재미있다’고 선언한 조 목사에게서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그는 사실 언론사의 화백으로 활동했었다. 베스트셀러 <울퉁불퉁 삼총사>(전 10권)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연봉 1억 원이 보장된 직장을 때려 치고, 그 힘들다는 개척교회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내 후배 중에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새로운 교회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부가 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인교회를 권했으니 이번 주에 가면 따뜻하게 맞아 주세요.”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조대현 목사는 온몸의 세포가 요동치며 살아난단다. 하나님이 새로운 영혼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은 조 목사에겐 새로운 사명을 받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감격에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그러나 오겠다는 사람이 꼭 곧바로 찾아오진 않는다.


예배 중에도 ‘언제쯤 오시려나’ 기다리지만 끝날 때까지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아내는 “하나님이 더 기도한 뒤에 새로운 성도를 만나라고 하시는 거 같네요”라며 웃는다. 그러면 조 목사는 기도원을 찾는다. 금식기도를 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영혼을 위해, 내가 기쁨으로 섬겨야 할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도로 마음을 단장하는 거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한 영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찾아온다는 말에 가슴이 뛰는 개척교회 목사라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조 목사는 한 달에 한 명만 보내달라고 기도한다. 한 영혼 한 영혼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교회를 개척한지 1년이 지난 지금 25명 정도가 모이고 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모였던 10여 명을 제외하면 정말 한 달에 한 명꼴로 부흥하고 있는 것이다.


 

억대 연봉 뒤로하고 교회 개척


그러나 개척교회가 항상 재미있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개척교회 목사들이 그렇듯 조 목사도 월세, 관리비 등의 재정난을 겪고 있다. 물론 사례비도 안 받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갑상선 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사실 조 목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화백이다. 국민일보에서 ‘시사만평’과 ‘한나엄마’를 연재했었고, 총 32권의 기독교만화를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울퉁불퉁 삼총사’(총10권)는 총 3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경제적인 거야 비교가 안 되죠. 언론사에 계속 있었으면 지금쯤 억대 연봉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0원을 벌어요. 1억대 0원이죠. 그러나 제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항로 수정이었어요.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안 되서 65세 할머니가 오셨어요. 그런데 그분은 평생 복음을 들어본 적도, 교회에 와본 적도 없는 분이었어요. 아! 이런 분들의 영혼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이 개척교회를 시키신 것이구나 생각이 들면 감사와 기쁨들이 넘치죠.”


개척교회가 재미있는 이유


‘개척교회는 재미있다’는 책을 낸 그에게 무엇이 가장 재미있냐고 물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구체적인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시작한다. 교회에 온 순서대로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점점 많이 알게 될수록 기도 시간도 늘어난다. 한 영혼과 깊이 있는 교제가 조 목사에게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착실하게 교회를 다니다가 큰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 부부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찾아가 기도하고 교회 비전도 설명했지만 여전히 교회 출석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부부가 새벽마다 배드민턴 클럽에서 운동한다는 말을 들었다.


며칠 뒤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 클럽이 있는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그러나 조 목사는 공원에서 가족들하고 몇 번 쳐 본 것 외엔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몸을 던져 바닥에 구르기를 여러 번, 그렇게 달포 정도 지났을까? 잘못된 자세로 무리하게 운동을 한 것이 문제였다. 오른쪽 팔꿈치에서 어깨 쪽으로 커다란 멍이 생겼다. 진단결과 근육 파열이었다. 의사는 당분간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음 날에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클럽을 찾아갔다.


“통증을 참아내며 그분들과 눈을 맞췄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회 시간에 그분들이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하나님의 백성이 들어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새벽기도회 시간 내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 부부는 몇 주 뒤 수요예배에도 참석했고, 그렇게 9개월 만에 교회에 등록했다. 다시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다. 조 목사는 지금도 오른 팔을 치료중이다. 그의 한 영혼을 향한 열심이 낳은 결과였다.


처음부터 이런 열정이 생겼던 것은 아니었다.


“저에게는 한 영혼에 대한 갈증이나 갈망이 있어요. 전도하는 것을 미루던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때부터 마음의 짐이 생겼어요. 복음을 더 빨리, 열심히 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죠.”


이런 마음으로 목회를 하다 보니, 교인들을 대할 때도 한 사람 한 사람과 진지하게 교제를 나눈다. 어린 아이라고 예외가 없다. 유치원 어린이 한 명과 칠판에 만화를 그리며 성경공부를 했다. 1:1 성경공부 과외는 1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한 조 목사의 목표는 대형교회가 아니다. 각각의 성도들이 모두 하나의 교회라는 것이다.


“개척교회의 목표는 대형교회가 아닌 사회에 건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봐요. 동시에 교인들이 각각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의 양적인 부흥을 바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잘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죠. 교인들이 서로 숨기고 싶은 아픔을 털어놓는 교회가 되어야 진정한 공동체가 된다고 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여러 명 전도하는 것 보다 한 사람의 성도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설명이다.


“저희 교회에는 초신자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빠른 시간에 변화가 되면 좋지만 더뎌도 상관없습니다. 그분들이 바로 조인교회의 존재 목적이니까요. 한 사람의 성도에게서 믿음의 고백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게 기쁨이지요.”


도심 곳곳 십자가 이야기


조대현 목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데, 문득 몇 년 전 동네 교회의 새벽예배에 갔을 때가 기억났다. 시장 변두리에 자리 잡은 그 작은 교회의 새벽예배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목사님과 어르신 세 분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3일 째 즈음 새벽예배가 끝나기 전 교회를 나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뒤따라 나오시더니 대뜸 물었다.


“학생, 자취하세요? 김치 한포기 줄려고 그래요. 싸 드릴게요.”


그 마음만으로도 따뜻함이 전해졌었다. 그 아주머니도 조 목사처럼, 한 영혼에 관심을 기울였던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한 어느 외국 기자는 서울을 “교회당들의 도시(Seoul, A City of Churches)”라고 표현했다. 도심 곳곳을 밝히는 수많은 십자가들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기자는 그 십자가의 수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써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조 목사의 ‘개척교회는 재미있다’에는 그 감동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연봉 1억 내려놓고, 한 영혼 살리기 위해 교회 개척
 
책 제목이 ‘개척교회는 재미있다’입니다. 책 속에 보니 제목의 부제가 ‘재미있기는 개뿔’이더라구요. 꼭 묻고 싶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으십니까?
재미있다는 게 역설이죠. 개척교회 목사님들의 특징이 패배의식이 있다는 겁니다. 빚도 지고 그러면 얼굴 표정이 안 좋아지죠. 수십 년 동안 목사를 안 하려고, 개척을 안 하려고 피하는 입장이었어요. 결국 복음을 전하는 데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죠. 그게 사명이었어요.

결정적으로 기도하면서 내려놓은 순간이, ‘하나님이 나를 원하는 포지션에 두라’고 기도할 때였어요. 목회를 원하시면 거기에 있겠다고요. 그러나 ‘개척은 안 합니다’라고 했었죠. 교육목사, 문화담당은 하겠는데 개척은 절대 안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싫지만 가야한다’는 마음의 결정을 갖고 순종을 하게 되더라고요.
 
▲ 만화로 강연하는 조대현 목사    © 생태마당
안정된 직장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분이 갑자기 목회를 하셨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거야 비교가 안 되죠. 언론사 있었으면 억대 연봉이었을 텐데. 0대 1억이죠. 아내는 건강도 안 좋고요. 언론사 화백에 개척교회 목사라고 하면 벌써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요. 게다가 예배당이 지하에 있으니, 그저 그런 사람인거죠. 나의 결정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일종의 항로수정이었어요. 
 
보람이 되기에 아직까지 웃으며 사역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65세 할머니가 교회에 왔어요. 교회라고는 평생 와 본적 없는 사람이었어요. 근처에 교회가 많은데 어떻게 처음인가 생각했죠. 그분이 전도를 받고 우리 교회를 나왔던 겁니다. 저 사람들이 필요해서, 내가 목회를 하는구나. 그런 분들을 볼 때 이 교회가 그분들의 영혼만을 구원한다고 해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한 거죠. 그분들만 보면 마음의 감사와 기쁨들이 생겨납니다. 
 
평신도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목회하시는 데에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되셨다고 쓰신 부분을 봤습니다. 평신도 사역과 개척교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개척교회 목사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개척한지 1년 반 되었습니다. 30여년 가깝게 평신도 사역은 쭉 해왔고요. 지금 생각하면 평신도도 목회자와 기본적인 포지션은 같다고 봐요. 집사이지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과 같죠. 제가 평신도 때 해봤으니까 가능한 것을 알죠. 그때부터 개척교회 목사가 되려고 준비된 것 같습니다. 평신도 사역할 때도 기도회 인도할 때 동일하게 회개기도가 일어나요. 제가 설교하고 기도해서 100명이 동시에 울음이 터진 적이 있었죠. 나도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구나, 그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평생 복음을 전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도 평신도 사역자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목사가 되어서 개척교회 담임이 되는 건 너무 싫었어요.

목사가 된 뒤 갑자기 대우가 달라지더라고요. 집사 14년 동안의 나는 그대로인데. 지방에 설교하러 갔는데 장로님들이 기다리고 서 있더라고요. 가방을 빼앗고요. “주셔야 제가 편합니다”라고 말씀하시고요. 식당에 갔는데 장로 할아버지들이 저를 기다리면서 식당에서 다 서 있더라고요. 집사 때 설교하러 가면 담당 전도사만 만나고 왔었는데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 거죠.

점점 벽이 허물어뜨려야 합니다. 천국가면 다 똑같아요. 한 영혼이 중요하다고 예수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대형교회 담임 목사에게 청년이 가서 기댈 수 있겠나요?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의 모습과 일부 목회자들의 모습이 어쩜 이렇게 안 닮았나 생각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배웠나요. 성경 어디에 나와 있나요. 그런데 그게 기독교 전통이 되어 버렸어요.

■ 대형교회 목사들은 쓸 수 없는 교인들의 개개인의 이야기,
    개척교회의 목표는 대형교회가 아닌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 끼치는 것.
 
이 책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할 수 없는 개개 교인들의 진짜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더라고요. 목사님은 이것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것이 개척교회’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개척교회가 재미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개척교회가 책을 낸다면 책을 안 내줍니다. 그런데 나는 대형교회 목사 책에는 감명 안 받아요. 다들 무슨 건축, 부흥, 완공했다는 내용들이잖아요.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발전도 대통령이 한 것이 아니고, 공돌이 공순이의 희생 때문이었잖아요? 그런데 특정 목사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죠. 목사가 위대해서 그런 줄로 오해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고 교인입니다. 교인이 만 명이면 만 명의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교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자기가 교회인데 건물을 교회라고 생각하니까 속는 겁니다. 교회에서 대하는 사람의 관계가 진짜 모습이 아니죠. 직장의 치열한 관계가 교회에는 없으니 발톱을 감추고 있는 것이죠. 좋은 모습만 보이니까 따뜻한 것 같지만, 진짜 속은 아닌 경우도 있어요. 교인들이 건물 속에 들어오는 걸 좋아하는데,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빨리 내쫓아야 합니다. 찬바람 쌩쌩 부는 곳으로 보내야 해요.
 

▲  조대현 목사의 만화


개척교회의 문제는 그들의 목표가 대형교회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개척교회들이 많은데 뭔가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의 목표는 대형교회가 아닌 건강하게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여야 합니다. ‘실패로 끝나는 구나. 지하에서 끝나는 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가 실패한 겁니까?
 
목회자 세미나를 가 봐도 그렇게 가르쳐요. 대형교회 목사가 강사로 나와서 이렇게 하면 부흥한다고 가르쳐요. 이야기해 봤자 개척교회 목사가 어떻게 쫓아가나요. 은사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른 걸요. 세미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개척교회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고 말하지만 자기 은사와 자기 교회의 색깔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10년 투자하면, 세미나 10년 참여한 것 보다 하나님께 더 쓰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양적인 것, 외적인 것으로 변질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교회 안에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신문사에서 15년 동안 일 할 때 안 믿는 사람에게 많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 문제가 많다고요. 그래서 제가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그리곤 설명해주죠. 교회에서 잘 못 배운 사람들이라고요.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낮아지라고 가르쳤습니다. 언제 건축 자랑하고 다녔나요? 요즘 교회를 양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예수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성경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 왜곡된 전통입니다. 그것을 후배들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죠. 
 
청년들도 대형교회를 쫓아갑니다. 젊은 신학생들도 대형교회를 선호하고요.
세상의 가치 기준이 교회 안에 들어와 버린 것이죠. 직장생활은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됩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곳을 치열하게 쫓아다니죠. 그런데 교회에도 그 문화가 들어 온 것이고, 신학생들에게도 그런 문화가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서로 겸손한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의 유익을 찾아갑니다. 그런 것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를 다스려야 하는데, 세상이 나를 다스리고 있어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를 인도해야 하는데, 세상의 가치 기준이 나를 끌어가고 있어요.

죄와 지옥에 대한 설교를 하면 부흥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축복, 긍정적인 마인드를 강조해야 한다고 합니다. 말랑 말랑하고 달콤한 복음인 거죠. 쓰지 않아요. 사기꾼이 더 크게 사기를 치게 하고 있어요. 성경에도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독사의 자식들아, 죄에 대한 강력한 지적이 있어요. 옷을 찢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신학생들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해요. 얼마나 잘 못 가르쳤는지 모릅니다. 나침반, 시금석, 걸림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세상의 성공가치가 그것을 막고 있어요. 무엇이 예수의 가르침인지, 섞여 있어서 분류를 잘 못하고 있는 현실이죠.

100% 하나님의 뜻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와 예수님이 말하는 우리의 인생, 성도의 삶을 좀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가르치지 못한 것이 왜곡된 신자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대형교회에서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개척교회와 호흡을 맞춰 간다면, 적절한 대안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교회들끼리 경쟁이 붙다보니까. 우리끼리, 우리만 잘 되면 된다는 마음이 화근이 된 거죠. 큰 교회는 계속 커지지만 결국은 수평이동입니다. 저는 그것을 깨고 싶어요.
교인들에게도 ‘여러분이 바로 교회다. 건물은 임시장소이다. 건축욕심 안내겠다.’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큰 교회 교인들은 자부심이 너무 강합니다. 마음속에 굉장한 우월감을 갖고 있어요. 거기서 끝납니다. 그 안에서 안주하다보니까 문제도 생기고 하는 겁니다. 목사는 세상으로 나가라고 내쫓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 사회의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데. 교사, 성가대, 남전도회 등은 교회 안에서만 열심을 보입니다.

세상으로 나가야죠. 동네 소외된 사람들, 상처받고 방구석에 있는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끼리만 너무 좋아해요. 큰 교회 몇 개 있는 것 보다 작은 교회들이 많이 있는 게 더 좋아요.

만 명 교회 하나 보다, 백 명 교회 1백 개가 났습니다. 대형교회도 필요하지만, 개척교회들이 지역을 책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개척교회가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개척교회의 자립을 위해 사람과 재정을 지원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분명 한국 교회가 살아 날 것입니다. 
 
청소년 사역도 오래 하셨습니다. 만화라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특별히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유념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불러내서 즉흥극을 합니다. 재밌게 하되 성경의 진리는 가감하지 않고, 심판에 대한 것도 가르치는 거죠.

성경학교, 캠프, 수련회, 중고등학교 특강, 기업체 특강 다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9시 예배이면 고개속이고 뒤에서 문자보내고 어딜가나 다 똑같습니다. 저는 어느 교회에 가든지 만화 그리면서 퀴즈도 하고, 그림 그려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관심분야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성, 학교 친구, 연예인, 솔직한 얘기를 하면 반응이 옵니다. 막 웃고 잘 받아들이고 그래요. 그러면 담당 부서 목회자는 “우리 애들이 이런 애들이 아닌데..”라며 놀라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원래 이런 애들입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한국교회가 청소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헤매고 있다는 증거이죠.
 
■ 역량 부족한 개척교회 목사들도 많아,
    설교를 한 편의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모든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목사님처럼 준비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을 더 노력해야 할까요?
개척교회 목사들은 표현, 단어, 설교의 구성 틀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됩니다. 저는 벌써 여러 권의 책을 내다보니까 구성 훈련을 해서 아는데, 어떤 분들은 언어의 사용도 불분명합니다. 내용도 어렵습니다. 신학강해와 주석을 그대로 교인들에게 던져준다는 것은 “소고기를 사왔는데 요리 없이 핏덩이를 주는 것”과 같아요. 맛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신학교에서 그게 훈련되지 않습니다. 청소년, 어른 다 마찬가지예요. 설교에 있어서 시대의 흐름, 자기의 장단점, 분위기를 휘어잡을 수 있는 유머나 긴박감, 한편의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비결이나 준비과정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신문과 TV보면 청소년이 어떤 생각하는 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만화라는 게 있고, 레크리에이션, 경배와 찬양도 했습니다. CBS창작복음성가 대회에서 입선을 했었죠. 아마추어로 3년간 활동도 했었습니다. 연극 <뮤지컬>도 공연했고요.
저는 주로 상황극을 많이 합니다. 교인 중에서 아버지와 딸을 모셔서 역할을 바꿔보기도 하고요.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 개척교회는 재미있다(두란노 펴냄)

앞으로 어떤 만화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해석하면서 하려고 한다. 천천히 한 권을 다 할 생각입니다. 집사들도 성경을 잘 모르더라고요. 현대인들이 바쁘게 살면서 성경 전체를 언제 보겠어요. 왜곡된 신앙의 상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통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설교도 좀 더 치열하게, 재미있게 하려고 합니다. 
 
어려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사모님이 갑상선 암 초기진단을 받으신 걸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찾아온다는 말에 가슴이 뛰는 나는 개척교회 목사다.”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결국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거죠. 제 목회철학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도 교인이 많아지면, 100명 200명 되면 분립을 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 목사들이 200-300명 이름은 기억할 수 있어요.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들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 25명 정도인데, 다 알아요. 그 집 사정도 다 알고, 구체적인 기도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개척교회 목사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만 명 교회 청빙을 갔다면 이런 마음은 못 갖겠죠. 모든 개척교회 목사들이 한 영혼에 대한 감사와 집중적인 관심을 느낀다면, 이미 그 목사는 성공한 목사라고 봅니다. 그런 시각을 나는 갖고 있지만,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주변의 몇몇 개척교회 목사들을 보면 너무 급해요. 그러면 교인들을 전체로 보고 숫자로 보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이죠.
 
- 교인들에 대한 기도가 매우 구체적으로 나오겠네요.
저는 새벽에 일어나면, 기도하는 순서가 있어요. 교회 온 순서죠. 애들도 있고, 유학 간 자녀들이 있는 가정도 있어요. 쭉 다 기도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욱 깊어지죠. 그것이 없이 우리 교회 교인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면 이런 느낌을 못 갖습니다. 많으면 200명 선이 되면 즉시 분립을 할 생각입니다.

한 영혼에 대한 갈증이나 갈망이, 전도하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늘 그런 마음의 짐이 있다. 복음을 더 전했어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교회의 굉장한 부흥을 바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죠. 갑자기 몰려오는 것도 원치 않아요. 

다 믿음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기질과 환경이 달라서, 개인적으로 만나서 상담할 때는 내가 분석한 데이터를 갖고 그 사람에 대한 말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소심한 사람에게는 조심조심 접근하고, 믿음의 상태를 보고 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도와 연구가 필요한 거죠.

한 사람의 성도를 맡는다는 게, 아주 어렵습니다. 진짜 하나님 뜻대로 산다는 고백이 나오려면,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교회는 초신자들이 많아요. 조금씩 변화가 되는데, 더딥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우리교회 존재 목적입니다. 큰 교회도 있어보고, 문화사역도 많이 해봐서, 교인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아요. 다만 한 영혼을 중심으로 보는 눈을 기르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지금 땅 속에서 썩고 깨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싹이 날 것입니다.
 
- 목사님 꿈꾸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입니까?
교인들이 전부 개인 개인별 특징과 열등감이 있어요. 학력, 직장,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있고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야 마음을 엽니다. 그래야 비로소 교인이 되는 것이라고 봐요. 자기의 아픔을 드러내고 털어놔야 교회 공동체가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요?
개척교회의 소중함, 교회의 변화, 교회가 한 사람과 한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는 목회자들이 더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 중에서요. 그런 분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격려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맺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작지만 바른 교회를 만들어 봅시다. 





인터뷰가 끝나고 직접 그려주신, 저의 캐리커쳐. 한 사람의 기자도 소중히 여겨 주시는 구나. ^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람 돕는 데 좌우 이념은 허구"
국내최초 난민지원단체 피난처 이호택 대표 인터뷰
 
이범진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었다. 보수언론지들은 일부 탈북자의 증언을 가감없이 대서특필했고, 진보언론지들은 북한의 경제난을 뒷받침하는 통계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이호택․조명숙 부부는 한국인들에게 사기를 당한 조선족 동포들을 돕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긴가민가하던 ‘북한의 식량난’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도 이들 부부다. 조선족 동포들이 북한에 있는 자신의 친척들도 도와달라며 호소했고, 북한 사람들을 만난 이들 부부는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했다.
 
▲ 이호택 조명숙 지음, <여기가 당신의 피난처입니다>, 창비, 2010. 13,800원

이들은 중국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실상을 정리한 자료와 사진을 갖고 언론사를 찾았다. A언론사는 “북한 식량난과 탈북자에 대한 기사를 쓰면 북한정권을 자극하는 것이 된다”며 거절했다. 오히려 그쪽에서 B언론사에서는 기사화 해줄 것이라며 다른 언론사를 소개시켜줬다.
 
그러나 B언론사에서 들은 대답은 “식량난으로 인민들이 탈북하고 있다고 하면 북한에 대한 동정 여론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에 써줄 수가 없다”였다.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이유로 거절한 것. 
 
다행히 당시의 심각한 상황들이 A언론사와의 동행취재로 기사화되었지만, 탈북자 문제가 정치적인 이념차이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복잡해졌다고 느꼈다. 
 
이에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어떤 포지션을 갖고서 활동가들이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습니다”라며 “현장에 있는, 정말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까 그런 것들은 단순하게 초월”되었다고 밝혔다.
 
굶어 죽어가는 탈북 난민들을 보면, 이념에 상관없이 돕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다. 이 대표보다 진보적이었던 조명숙 씨가 현재 여명학교에서 탈북학생들의 어머니(교감)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념’이 아닌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면, 정치적인 입장들이 초월되어 인간적 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노동자, 탈북 난민들을 돕던 이호택 대표는 1999년 국내 최초의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를 설립,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을 돕고 있다. ‘난민’이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와는 다르다. 전쟁이나 정치적 박해의 위험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 피난하면서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주자들을 의미한다.

지난 16일 직접 ‘피난처’로 이호택 대표를 찾아가, 사법시험에 열 차례 떨어진 이야기, 난민들을 돕게 된 신앙적인 계기, 사역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물었다. 그동안의 사역을 정리한 『여기가 당신의 피난처입니다』(창비 펴냄)에서 하지 못한 속내를 들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책에는 사역에 뛰어 드신 신앙적인 부분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이야기는 못하게 되어있어요. 일반 출판사이기때문에요.
 
그러나 이런 사역을 하시게 된 데에는 신앙적인 동기가 결정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결정적이었죠. 제가 81년도에 예수님 만났구요, 예수님 만나기 전에 인권에 대한 의식, 법률, 전공. 이런 건 예수님 만나기 전에 결정되어있었어요. 예수님 믿고 나서 제 인생을 어떤 식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신지 물으면서 진로를 결정하게 되죠. 이미 법학을 정한 뒤에 말이죠. 물론 학생운동도 하고 그랬으니까. 데모를 하고, 우리 나라 인권을 위해서 싸워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런 식으로 인권운동 하는 것이 저한텐 와 닿진 않았어요.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그분께 내 삶을 드리면서 어떤 식으로 인생을 계획하고 계신지. 어떤 식으로 인도해가실건지 물으면서 살고 있었죠. 그렇게 물으면서 준비해 가는데, 어떤 계시가 온 건 아닌데 법률가로서, 법을 전공한 것이 주님의 인도라는 생각이 들었고, 법과 대학에 들어온 것도 그래서였지요.

법과 대학에 들어왔으니까 법을 공부하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하고 공부를 대학3학년부터 시작했죠. 그러니까 예수님 믿고 난 다음부터 주님께 진로를 맡기고 공부한 거예요. 진로를 주님께 맡기고. 근데 뜻하지 않게 잘 안 되었구요. 내가 진로를 잘못 선택한 거고, 주님 음성을 잘못 들은 건지, 아니면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10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하셨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일 뚜렷한 거는 시험이 안되니까 내가 주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거나 잘못 받았겠지라고 생각하는게 제일 쉬운데. 주님께서 내 모든 것들을 아시고, 법과대학에 들어온 것, 사법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한 것 주님께서 아시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되지 않았을 때, 이게 잘못된 건가 생각했지만, 주님께서 ‘네가 잘못됐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다시 가라’ 그런 말씀은 없었어요. 그랬을 때는 가던 길을 가는 것이다 생각했고, 제가 창세기 12장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말씀하신게 아니라, 너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너에게 지시한 땅을 가라고 했지만, 사실은 지시를 안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가나안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가나안으로 갔거든요. 
 
그래서 나는 이제 나의 가나안, 사법시험공부 계속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 쪽으로 계속 갔어요. 근데 결국은 안됐죠. 그러나 안 된 곳에서 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걸 만났고, 탈북자분들을 만났고, 남미 선교하는 길을 만났기 때문에 저는 내 생각에는 이게 내 가나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너의 가나안이다’ 생각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난민을 위한 그런 길로 인도해오셨다고 생각했죠.
 
책을 보니까 현장 거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시더라구요. 정책적으로나 NGO운동을 하더라도, 뒷선에서 하는 분들은 봤지만 최전선에까지 가셔서 현장조사도 하시고, 직접 눈으로 보신 분이기 때문데 제가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난민’이라는 걸 어쨌든 증명해가는 과정이잖아요. 그 증명을 판단하는 쪽은 탁상행정하시는 분들일 텐데 현장 활동가로서 한계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것은 다를 것이고, 책이나 글로 접한 것과도 또 다를 텐데요. 
그래서 제가 경험한 모든 현장들이 최일선 현장이었고, 제가 몸담았던 모든 필드들이 개척지 사역이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도 그 때 당시 아무도 일하는 사람이 없었고, 탈북자도 그 때 당시 아무도 없었고 난민도 아무도 일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했구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피난처시오, 힘이시오. 환난 중에 만나는 도움이시라. 이 모토거든요 모든 게 이미 다 정형화된 거는 피난처라고 볼 수가 없어요. 제도가 있으니까 시스템대로 하면 되거든요. 근데 제도가 없고 시스템이 없을 때, 길이 없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길이 있다’ ‘방법이 있다’ 또 ‘주님이 너의 피난처가 되신다’ 이걸 선포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최전선이에요. 

물론 난민사역 전체도 그렇지만, 난민사역 안에서도 예를 들어 매번 새로운 사람들이 오잖아요. 그중에는 ‘한국정부가 좋아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다’. ‘제도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가능한 일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소송에서 1심, 2심 3심에서 끝났다, 대법원에서 다 끝났다, 그러면 끝났잖아요.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도 전 방법이 없단 말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주님께서 예비하신 길이 있다’고 얘기해야하는 거지요. 어떻게 무슨 길이 있겠어요. 뭐 없어요 사실은 객관적으로 없지만 믿음으로, 믿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기다리면서 인내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개척해야 하는 거죠. 길은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매번 케이스마다도 역시 항상 최일선에 있어요. 스트레스가 많죠. 스트레스는 객관적으로 보면 많은 거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사하죠. 모든 것들에 있어서 주님께서 주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도록 초청하고 계시니까, 믿음으로 하고 간증을 가지고 할 때는 박진감 넘치고 신납니다.
 
탈북사역하실 때 언론사에서 다뤄주지 않아서 왔다 갔다 하신 얘기 재밌게 읽었어요. 아직도 탈북사업에 있어서는 진보, 보수따위의 정치적 접근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그들과 직접 대면하시고, 마주한 사람으로서 그런 이념적 차이의 허구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념에는 자유롭습니다. 학생운동권이었고, 좌파였고, 젊은 시절 마르크스를 공부했고, 그 사람들 다 공부하고. 학생운동에서도 같이 활동하고, 같이 활동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다 리더로 나가있고, 진보라면 학생운동경험, 외국인 운동 하는 거엔 진보라고 인정해줘요. 아 이건 진보다. 학생운동하고, 외국인 난민운동하니까 너 진보다 인정해주죠.

그런데 기독교인이다. 탈북자 사역한다고 하면 ‘넌 보수다’ 이렇게 말들 하죠. 그래서 외국인 난민 일할 때는 진보사람들하고 일하고, 탈북자일할 때는 보수사람들이랑 일합니다. 안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어요. 사람을 도우려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죠.
 
어떻게 보면 해야 할 일들을 이념을 초월해서 일하시는 거네요.
약간 기질적으로 보면 저는 보수성향이 있고, 마누라는 진보성향이 있어서 부부간에도 저는 약간 진보쪽이죠.
 

▲ 이호택 대표. "그냥 시작하면 되는 거예요. 일단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예요."    © 피난처 제공
조 선생님은 약간 고집스럽러우시다고 대표님을 평가하시던데....
근데 사실은 나는 외국인, 난민 사역을 하니까 진보적인을 하고, 부인은 진보인데 탈북자일을 하고 있어요. 서로 이념적으로 반대되는 사람들 틈에서 사역을 하고 있죠. 이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사실은 어떤 포지션을 갖고서 활동가들이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습니다. 저는 그런 이유가 이 분들이 단순히 현장에 있는, 정말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까 그런 것들은 단순하게 초월하게 되는 거구나 느낍니다. 
 
그런 부분들에서 제가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분들 많이 대하시다 보니까 그 외국인마다, 저마다의 민족성도 있을 거고, 나라의 특성, 문화 같은 것도 다 다를텐데요. 그럼에도 민주화운동이라던가. 한국에서의 역사적 상처들과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온 난민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먼저 경험한 나라로서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도 아직 다 완전히 치유됐다고 할 수 없겠지만요.
우리가 희망이 되어줘야 하겠죠. 쿠르드사람이라든지, 또 미얀마사람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한테는 과거에 우리가 이런 역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들한테 위로할 말이있다. 소망을 가져라. 뭐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쿠르드 사람들, 미얀마사람도 그렇고.

근데 그 분들이 처음엔 그런 말을 가지고 위로를 받는데,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소외하고 천대하고, 전반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위로를 못 받죠. 한국이 난민들을 수용하고, 난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되면, 이분들이 이젠 과연 한국이 그런 역사를 거쳐 왔고, 또 그런 과정의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고 있구나 받아들일텐데... 뭐 아직은 조금...부족합니다. 그러나 아직 소망은 있어요. 한국이 난민이나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천대하고 소외시키는 그런 사회만은 아니고, 되게 따뜻한 사회고 가능성 있는 사회거든요. 난 그렇게 해석해요.
쫌 미안하지만 중국은 나는 쫌 못됐다고 봐요. 중국은 사회가 그런 여유가 없어요. 사역자들이 거기 가도, 약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약한 것들을 착취하는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가거든요. 중국사람들에겐 약한 걸 보이면 안 되요. 동정하기 보다는 이용하고 착취하거든요. 

그래도 우리는 약한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주고,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정서가 있고, 시민사회가 널리 형성되어 있어 그나마 낫죠. 그리고 난민법이 내년에 난민협약 61주년이거든요, 61주년기념으로 그 때 맞춰서 한국에서도 난민법을 개정하자. 그리고 난민법개정을 계기로 해서 한국도 선진적인 사회로 가자, 이런 주장을 하고 있고, 이런 주장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난민분들을 돕는다는 것이 굉장히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그 기간 안에 그들과 접촉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 같습니다. 힘든 일도 많으실 것 같구요.
난민들을 위해 하루 봉사하려고 오는 분들도 있어요. 일곱명 정도가 '피난처'에 와서 한시간 정도 봉사하고 가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난민 사역은 장기적으로 돌봐야하거든요. 돌보는 거는 문제는 없는데, 일정한 프로세스를 밟아나가야 해요. 물론 이미 제도화 된 것은 도울 수 있는데 그걸 넘어서면 벽에 부딪히죠. 벽에 부딪힌 뒤부터는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는 거예요. 길이 없어질 때가 많죠. 

장기간 도와주시고 하는 것들을 옆에서 난민분들이 보시잖아요. 그분들이 감동하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일시적으로 와서 먹을 걸 주면서 선교하는 것보다도 더 효과적인 선교가 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지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데, 오래가면서 우리가 지치면 둘 다 망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치지 않기 위해 항상 저희들이 날마다 새롭게 하고, 기도하고 경건시간가지고 그러고 있죠. 어떤 때는 저희들 분위기도 침체하고 힘들었고, 어떤 때는 충만하고 힘있고. 지금 같은 경우는 저희들한테 들어오는 요구들이 세거든요. 예를 들어 난민중에도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학교 들어가야 하는 데 아무것도 없어요. 돈도 없고, 수입원도 없는데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알려주고, 대학에 설득해서 어드미션을 받았어요. 고려대학교에서, 그다음엔 ‘이젠 합격했으니까 어떻게 할래?’ 등록금 등의 문제가 이게 우리한테 옵니다. ‘근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알아서 해야죠.’ 이렇게 하면 망하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해서 우리가 등록금을 마련해 준다든가하면 잘하는 거죠. 

근데 내 아들도 아닌데 우리가 등록금을 어떻게 대주냐고요. 생각에는 ‘우리가 등록금을 어떻게 대주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알아서 해라’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피난처가 아닌 거죠. 끝까지 같이 고민해주는 게 피난처지요. 

▲ 피난처 열국아이학교  © 피난처 제공

 황당한 일들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아요.
물론입니다. 어떤 난민분은 월세를 15개월 밀렸대요. 그 사람이 일도 할 수 없고 몸도 아프고, 고문당해서 다리 관절이 상한 분이예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국에서 금지해놨어요. 그러기 때문에 일을 할 수 도 없고, 목사이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분이 15개월 동안 국내에 머물렀는데 난민인정이 안됐어요. 자기는 ‘난민인정이 안됐으니까 그래도 법을 지키고 싶으니까 돌아가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항공료 160만원이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할거냐’고 오히려 저에게 되묻더군요. ‘네 문제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 좋은데, 그분들에게는 피난처밖에 없다는 걸 제가 알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요. 계속 끌고 가는거죠. 방법이 생기고 돈이 생길 때까지요.
 
또 수술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 있을 때 붙잡고 있으면 주님께서 언젠가 길을 보여주시는 그런 간증들이 많이 있어요. 그 간증에 근거해서 그들을 붙잡고 가는 거죠. 그런데 주님이 우리 바람대로 모든 방법을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에, 항상 우리 마음가운데 긴장이 있죠.
 
선교적인 차원에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우리가 제일 처음 시작한 게 쿠르드난민인데, 쿠르드 난민은 난민으로 인정을 못 받아서 다 쫓겨날 상황이었어요. 그때  믿음으로 길이 있다 선포하고 인도적 지위를 받게 됐구요. 그런 간증을 보면서 그 중에 쿠르드 한 사람이 예수를 믿어가지고 목사가 되서 동두천에서 쿠르드목회를 하고 있어요. 이라크 쿠르드사람인데. 원래는 다 무슬림들이었죠.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줌머’라고 방글라데시분들이 난민으로 인정못받던 상황이었습니다. 방법이 없어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결국엔 난민으로 인정받게 되었죠. 그때가 소송으로 처음 이긴 케이스입니다. 제가 변호사 없이 해서 이긴 경우죠.

이번에도 우리 자원봉사자가 변호사 없이 혼자 수행해서 줌머분들의 난민 인정을 받아냈습니다. 변호사가 없는 케이스는 소송을 해도 별로 가능성이 없단 뜻입니다. 변호사에게 주기 미안해서 자원봉사자들이 최선을 다해 해 보는 거예요. 근데 자원봉사자가 수행해서, 소송을 이겼어요. 그 친구가 새벽기도하고 주님 앞에 신실하게 매달리니까 주님께서 격려하고 표적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도 계속 붙들고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냥 붙잡고 가는 겁니다.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이 안 되더라도 결혼을 한다든지, 이런 방법으로 솔루션을 줄 수는 있지요. 최근에 어떤 나이지리아 사람도 소송이 안 되서 계속 시간을 갖고 주님께 기도했는데, 그 사이에 호주 여성을 만나서 호주로 갔어요.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해결책을 많이 마련해주시는 것을 몸소 체험하니, 방법이 없어도 붙들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거군요.
꼭 피난처가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어떤 이란 분은 4년동안 감옥에 있다가, 감옥에서 예수님 믿고, 난민신청하고 난민인정이 안 되서 종교난민으로 있었죠. 그런데 처음에 이 사람이 진실한 것인가 아니면 이란에 가기 싫어서 속이고 있는 것인가 의심받았죠. 
 
그런데 누가 4년 동안이나 자기를 속이면서 예수 믿겠다고 계속 있겠어요. 좀 있다 안 되면 가죠. 오히려 그 안에서 성경읽고 기도하면서 신앙이 엄청 자란겁니다. 처음엔 초신자였는데, 자기 혼자 성경공부하고 기도하면서 4년 동안 감옥에서 신앙이 더 굳건해졌습니다. 그 사람 케이스가 가장 길이 안보였는데 결국 풀려나 지금은 신학을 공부할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난민들의 생활이 상상해도 어려울텐데, 그 안에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연출되는게 보이니까 더 따뜻하더라구요. 저희가 배워야 할 모습들도 많을 것 같아요.
일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니까 너희들 가져가’ 이러면 분위기 썰렁하고 이 사람들이 참 힘들어요. 사실 나는 그런 거 잘 못하는데, 조 선생이 참 탁월하지. 그런 것 때문에 저희 피난처 활동이 사람들이 굉장히 즐겁게 일하죠. 탈북자들도 그래서 모이기 시작한 거고. 사람들이 자기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오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탈북자사역도 성공하게 된 거죠.
 

▲     ©피난처 제공

줌머분들의 여유있는 모습 때문에 처음엔 의심하셨었다고 쓰신 걸 봤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까 정말 문제가 많은 것을 알았다라고요. 현장 자료들은 문화인류학적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좋은 자료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 나라들의 민족성이라던가 문화적 틍성 등 앞으로 세계의 모토가 ‘화해’임을 견주어 볼 때 ‘피난처’의 사역이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지금은 난민 사역 하시는 분들중에서이 법을 전공하신 분들이 좀 많습니다. 난민인정 절차를 밟는 쪽으로 사역이 치우쳐 있다 보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인류학하시는 분들이 많이 참여할 필요가 있죠. 그렇지 않아도 문화인류학 하시는 분들이 점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NGO활동을 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조언을 구할 때 ‘명함부터 찍으라’고 하신다고요.
너무나 어렵게 생각하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단체나 조직을 만들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팩스기나, 사무실 임대 등을 생각하는데 그냥 시작하면 되는 거예요. 일단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예요. 한사람부터 시작해서 확산되는 모델도 많이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확산되는 모델을 좋아합니다.
 
인턴 모집하는 홈페이지 광고를 보니까 조건 중에 ‘기독교인’이라는 게 있더라구요.
기독교 단체니까요. 우리는 기독교NGO니까요. NGO지만 기독교인이 만든 NGO입니다. 우리가 하는 서비스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지만, 주체는 ‘기독인들이 어우러져서 하겠다’해서 기독NGO로 정체성을 정한 거거든요. 약간은 열려있는 열린NGO라고 할 수 있겠죠. 너무 폐쇄적이면 다른 분들이 힘들어하니까.
 
물론 종교가 다른 분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 자체가 기독교라는 거죠. 기독교인을 모집한다고 하는데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데 하면 안 되냐’ 그러면 해도 됩니다. 다만, ‘우리는 원래 기독교 단체다 네가 이런 거에 있어 양해를 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 기독교적인 방법으로 일하는 거에 있어서 거부감 갖지 말아라’ 하는 정도죠. 왜냐하면, NGO적 방법으로 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법률적인 방법으로 돕는다든지, 옷을 나눠준다든지, 음식을 나눠준다든지 이런 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되요. 아까 말씀드린대로, 그러나 벽에 부딪히는 것들, 우리가 인간의 이성으로 한계를 부딪힌 사건들, 이런 것들도 우리는 한계가 없다고 선포를 하는 거거든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보는 거죠. 기독교인으로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개입하시지 않으면 도무지 할 수 가 없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을 믿고, 하나님의 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피난처가 되고자 하는 겁니다.
 
기독교쪽의 사회적 신뢰도가 또 떨어졌다고 뉴스가 났습니다. 피난처와 같이 장기적인 선교, 봉사분야에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의 난민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나, 피난처의 사역을 천천히 조금씩 느끼면서 감동받고 예수를 받아들이고 이런 것이 진정한 선교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입을 열어서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선포하고,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 그런 사역도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항상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묵묵하게 선행을 통해 예수님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 하는 그런 선교도 필요한 거죠. 

물론 선행이나 자선 자체가 복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을 한 그릇 전해주는 사랑없이 그냥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사랑의 실체를 잘 전달 못하는 거잖아요. 선행을 하면서, 또 때를 얻어서 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있는 대로 복음 전하는 그런 모델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결국은 우리는 그런 복음을 전하는 선포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그런 선포는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얻어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면, 사역을 오랫동안 해오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자기평가랄까? 어떤 의미에서 보면 대표님은 굉장히 역동적인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청년들에게 해줄수 있는 조언이나, 선뜻 사역을 하려고 해도 용기가 안 나서 못하시는 분들에게, 미리 가보신 분으로서 조언하신다면요.
의도적으로 또 인생을 계획해서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그리고 자기자신을 버리고 부인하면서 가는 거는 제일 바람직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은 제가 모든 것을 버리고 부인하고 일부러 선택하고 의도해서 이 길을 오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몰아가시고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을 주님께서 막아서 이쪽으로 오게 된 케이스입니다. 

제가 경험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저는 예를 들어 제가 사법시험 준비해서 됐다면 그 범위안에서 선하게 살려고 했겠죠. 안됐으니까, 사법시험되려고 노력했던 사람으로서 저는 주님께서 주신 소원과 자기 환경 최선을 다하라고 하고 싶구요. 그런데도 안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인생이 구겨졌다고 생각하지 말구요.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최선의 삶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하면 될 것 같구요. 항상 우리가 물질이 부족해서 불안해하는데, 자족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지금 자유해지고 부족함이 없어요. 제가 지금 월급을 120만원 받아요. 그것도 최근에 한 2년 전부터 책정을 해서 받는 거고 그전에는 이렇게도 못 받았거든요. 저의 동료라던지 주변사람들이 받는 것에 비하면 형편은 없죠. 그러나 제가 단순함을 개발하고, 꼭 필요한 곳에는 쓰지만, 필요없는 곳에 돈쓸려고 하는 필요자체가 없는, 돈 10만원만 있어도 부족함이 없는 거죠. 그런 단순함을 개발하고 그러면, 120만원 받는 환경으로는 주님께서 인도해가시고, 또 우리 피난처도 단체로서도, 지금 6명의 스텝이 있는데 우리가 쓰고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고 그럴만한 돈들이 우리가 필요한 만큼 항상 주님께서 공급해주신다는 거예요. 보통 설교에서 목사님이 하는 설교집에 있는 말이 아니고 경험해보니까 그래요. 항상 주님께서는 필요한 건 주시다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템포는 조금 느려요. 믿음을 훈련시키길 원하시기 때문에, 그러나 템포가 느린 이유는 우리를 연단하시고 자라게 하시기 위한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뭐가 부족하고 뭐가 없어서 뭐를 못한다’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진로에 대한 불안, 주님의 공급에 대한 불안, 이런 것들이 희한하게 청년기에 가장 많아요. 20대 때, 제일 꽃다운 나이에 불안이 제일 많아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어요. 주님께서 인도해 가시기 때문이죠.
 

▲ "저는 난민사역을 통해서 열국의 아비가 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있어요."     ©피난처 제공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으시다면요?
제 이름이 아브라함이거든요. 믿음의 조상. 그리고 저는 난민사역을 통해서 열국의 아비가 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있어요. 저희 난민, 만나는 모든 나라들에서 영적인 자녀들을 낳아서 열국의 아비가 되는 꿈을 제가 가지고 있구요, 그 꿈을 주님께서 이 피난처를 통해서 이루어가시는 걸 목도하고 있거든요. 열국의 아비로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연단하신 뒤에 아비로서의 꿈을, 진로가운데서 여러 가지 공급해주시면서 인도해 가신다 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

청년들에게 그렇게 권하고 싶고. 저는 피난처가 제 인생의 절망, 망한 것 같은 어두운 곳에서 시작된 사역이었구요. 오늘날, 그래도 이제는 모양도 갖춰지고 사람들에게도 주님께서 이렇게 인도해오셨다고 간증할 만한 형태를 갖췄는데, 앞으로도 계속 저는 열국의 아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 성장하고 자라야 되거든요. 열국의 아비가 되려면, 온 세상을 덮을만한 미래가 전제되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주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가실 걸 믿고 있어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1 2 3 4 5 
BLOG main image
그네를 타보신적 있으신가요?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그곳, 바람을 맞으며 활짝 웃던 그날의 기분을 떠올려 봅니다. 젊은 꿈터의 블로그입니다. 그네를 타듯이 땅과 하늘의 경계를 허물고, 일과 놀이 사이를 넘나드는 젊은 꿈터의 혁명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by 젊은꿈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87)
꿈꾸는터 | Book & People (61)
꿈 굽는 사람들 (24)
즐거운 틈새 (7)
즐거운 인생 (5)
언론보도 그 뒷면 (5)
출판사도 읽는 책 (21)
20대 즐거운 출판사 운영하기 (13)
좌충우돌 북 메이킹 (10)
좌충우돌 출판사 창업 (4)
백사장 분발 (7)
편집장 취재육감 (56)
디자이너 윤씨 (17)
허이삭의 연재만화 (25)
꿈터 스터디 (8)
젊은 일기 (9)
김회권의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 (10)
이젠 이-북(e-book) (5)

달력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예수님과 함께 드라마를?★
드라마틱
백소영 저




★일상의 샘물에서 퍼올리다★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구미정 저



★ 국내최초 자기계발 소설 ★
리얼 멘토링
김한훈 저/송진우 저/김정태 저



:::: 대안경제 희망 대백과 ::::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전병길,고영 공저



:::: 사도신경 쉬운 해설서 ::::
40초의 고백
지관해 저



개(開)독교를 위한 변명(품절)
개독교를 위한 변명
변방의 청년 6인 저



★국제대학원 일급 메뉴얼★
한국에서 세계를 품다
김주헌 등저



김용담 대법관 퇴임기념 회고록
김용담 대법관의 판결 마지막 이야기
김용담 저



:: 변방의 학술도서 프로젝트 ::
신사참배와 맞섬의 신앙
이정호 저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