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놀랐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이리 저리 자료들을 뒤적거려 보았다.
이론적인 다툼은 내가 본 대학시절의 논쟁상황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사형의 야만성과 잔인함, 오판의 경우에도 돌이킬 수 없는 사형집행의 무모함, 사형제도가 가지는 범죄억지효과의 미 증명, 사형 제도를 정치적으로 악용(惡用)하여 온 역사, 다양한 범죄의 원인에는 눈감고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국가와 사회의 무책임, 현명한 사람은 과거의 범죄행위 때문이 아니라 미래의 범죄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형벌을 부과한다(nemo prudens punit quia peccatum est sed ne peddetur) 책솄네카의 멋Ä범맄의 원용,) 고문과 사형제도의 불의함(injustice) 과 무의미함(futility)을 주장한 베카리아(Cesare Beccaria)의 “죄와 형벌(Dei Delitti e Delle Pene)"뉘감고용 등 사형폐지론의 주장은 한결 같았다. 미국의 경우를 상 개인것이겠지만, 사형 제도를 폐지하책임,이 존속시키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주장이 사형폐지론에 더하여진 새롭다면 새로운 것이었다. 사형폐지론의 주장은 끈질기고도 꾸준하였다.
사형존치론 쪽의 주장도 한결 같았다. 사형제도의 정당성이나 합헌성을 확인하는 거듭된 대법원의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사형존치론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사형폐지론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달라져 있었다. 도대체 제대로 개발된 민주주의 국가로서 사형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다.
통계에 의하면 1977년까지 사형 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16개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 사형 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나라가 99개국에 이르며,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따라서 사실상 사형 제도를 폐지한 나라도 30개국에 이른다. 즉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법률상 사실상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셈이다.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아직은 68개국에 이른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과 중국을 빼면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대부분은 저개발, 비민주 · 독재국가들이다. 2004년 한 해 동안 중국은 아직도 1년에 수천 명씩을 사형 집행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EU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EU가입의 조건으로 하고 있고, 터키는 EU에 가입하기 위하여 2004년 5월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개헌까지 하고 있었다.
사형존치론과 폐지론의 대립이 첨예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소견이 폐지론 쪽으로 기울고 있다면, 그리고 이미 사형을 폐지하는 것이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면, 이제는 우리도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가 아닌가? 그렇다면 비록 정면으로 사형제도의 위헌을 제청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양형을 다시 하도록 원심을 파기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피고인 측의 항소를 기각하여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사형제도는 단순히 이론만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고, 각 나라 국민의 법의식과 정의관과 깊이 연결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사형제도의 존폐는 재판관 몇 사람의 의견만으로, 설령 그 재판관들의 의견이 일치된다고 하더라도, 결정할 일이 아니다. 사형제도의 존폐만큼은 헌법사항으로 주권자의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나라들이 헌법개정절차를 통하는 것도 이런 뜻일 것이다.
김용담 대법관의 『판결, 마지막 이야기』(누름돌)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