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평균 월급이 꼴랑 88만원이라는 문제를 지적하고, 그에 대한 설레는 대안까지 슬쩍 내비췄던『88만원 세대』가 출판된 이후. 청년들, 젊음들, 청춘들을 위한 책들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타겟팅을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잡은 책은 아마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일 것이다.
| |||||||||||||
1934년생, 존경받는 지식인이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갈 젊음들에게 쏟아내는 조언들이 담겨있다.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적고 있지만, 그의 글쓰기 방식은 정말 존경스럽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탁월한 글쟁이들의 글은 항상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준다. 내용은 그냥 정직해라, 부지런해라, 할 수 있다, 즐겨라, 희망을 가져라 등으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다만 여기에 이런 당연한 가르침들을 '상징화'하는 매직카드가 그려져 있다는 게 흥미롭다.
출판사의 의도는 잘 모르겠으나, 이 카드들은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한 말을 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의 말들을 신비롭게 꾸미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싶다. 더 순수하게 생각해보자면, 당연한 진리를 잊고사는 젊음들에게 그 진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상징을 선물한 거라고도 여겨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접어놓은 부분은 2곳인데.
그중 한 곳은 토키/오리 그림을 그려놓고, 좌우간의 갈등을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가 아직 때묻지 않은 젊은 독자들에게, 제발 편협한 이념게임에 빠지지 말 것을 호소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에 깊이 개입한 바 있는 그는 토끼로 보일 때는, 절대 오리가 보이지 않고..오리로 보일 때는 토키를 볼 수 없다며..
토끼와 오리를 함께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도 내비췄다.
토끼로 보다가, 오리로 보다가, 일종의 스윙현상이 생기면서 원형운동을 벌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확실치 않다.
두번째 부분은 바로,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부분과 일치하는 곳이라서 체크를 해 놨다.
프로보다 기량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서툰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원래 아마추어란 말은 '사랑한다'는 라틴어의 '아마레'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에 대한 기량이나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임하는 정신과 태도의 차이를 뜻했던 것이지요.(240쪽)
억대연봉을 받는 기부청년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이상왕(대통령)과 이상국(세계문화주도국)을 제시한 책이었다. <젊음의 탄생>과 이 책을 비교한다면, 먼저 저자의 유명도가 가장 눈에 띄지만..책 자체로만 본다면 큰 수준차이는 없어보인다.(물론 거장 이어령이 10대후반의 아이들을 겨냥했기때문) 출판사 입장에서 실수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바로, 타겟팅이었다.
당시 저자는 물론 출판관계자들은 모두 이 책의 타겟층을 '전국민/전연령대'로 잡았었다. 한 집에 한 권씩은 꽂아버리겠다는 포부였다. 나중에 출판 전문가들에게 들은 거지만 "내 책은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해요"라는 책의 원고는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 차라리 기부청년이 다른 청년들에게 평등한 관계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로 콘셉을 잡고 원고를 수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유시민이 이 책의 추천서를 써준다고 해서 기존의 부수에 3배에 달하는 양을 인쇄하고자 계획을 잡고 있었다. 원고와 샘플을 보내달라며 적극적이었던 유시민은 연락이 두절되고, 결국 우리는 인쇄일정에 맞춰 찍어버리고 말았다.
| |||||||||||||
그래서 소인배인 나는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 비춰지는 그 속내를 100% 믿지는 않는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성찰'적이라는 거다. 디자이너 윤씨가 지적했듯이, 그 어느 책에서 보다도 자기 자신을 드러낸 책이다. 교양인문분야의 베스트셀러로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듯이, 내용은 이미 검증을 받았다.
청춘들이 읽었으면 하는 세계적인 양서들에, 자신의 경험과 사상들을 빗대어 보고...반성과 희망을 도출해 낸다.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을 전해준다. 그런데 난 이 책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청춘들에게 또 하나의 '필독서 목록'을 추가해준 것이 아닌가해서 말이다. 그가 꼽은 책들을 양서로서 의심하는 게 아니다. 단지 경쟁의 굴레를 돌고있는 청춘들에게 또 하나의 장착무기를 달라고 압박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압박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당당히 서 있는 동안 더 심해졌다.
맞다.
그때 약속대로 추천의 글을 써줬다면, 그의 글이 조금은 더 진정성있게 다가왔을 수도.
비슷한 사례는 또 들 수 있는데.
바로 88만원세대를 '만들어 낸' 우석훈.
우리는 그에게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열매나눔재단이라는 곳으로부터 작은 출판사라고,
80% 이상 진행된 출판작업을 접고 난 난 뒤였다.
절망의 세월에....
<88만원세대>의 저자라면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그가 말한대로 우리 젊은 세대들 끼리의 연대..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바리게이트..를 쳐보자.
아니나, 다를까 그는 너무 멋졌다.
"추천으로는 부족하니, 해제를 써주겠다"는 것.
역시 다르구나. 그런데 원고를 꼼꼼히 읽어봤다는 그의 반응은
"나의 생각과 다르다. 해제해줄 수 없을 것 같다."였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듯이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는 사실,
거창한 이념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대안경제, 사회적기업, 마이크로크레딧, 공정무역 등으로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박원순, 원희룡, 심상달 등이 장문(원고지10매)으로 추천해준 원고였을 정도로
특정 이념을 초월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우석훈을 이해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그는 '듣보잡' 변희재가 꾸리는 단체에 축사를 하러갔나(정확히 기억안남/안 중요함)해서,
<88만원세대>의 숨겨진 저자 박권일과 진보진영으로부터 때아닌 '색깔논쟁'에 희생당하고 있었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을 수 있었단 말이다.
어쨌든 그의 책. <88만원 세대>는 그렇게 나에게 생명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가 "20대여, 쫄지 마, 상상해 봐. 혁명을!"이라고 외치며 출간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도
돈 주고 산게 아깝다.(난 끝까지 만류했지만, 백 대표가 구입했다).
스티븐코피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저자인 코비만을 성공하게 하고,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역시 그 저자만 '부자아빠'로 만들어 줬듯이..
<88만원 세대>의 우석훈도 '이렇게 조용히' 스스로의 명예와 부를 축적했다.
물론, 이런 평가는 내가 삐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까지 꽤 비굴하게 그에게 부탁을 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제를 해줄 수 없다?
그거야 써주는 사람 마음이기에, 비판받을 건 아니지만
해제를 해주기로 약속했으면 '나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이 부분은 취약하지만', '이 부분은 비판 받아야 하지만' 등의 수식어만 넣어서 충분히 써줄 수 있었다. 적어도 내 상식에서, <88만원 세대>의 저자라면 약속한대로 써줬어야 했다.
그가 강연다니고 책 쓰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실적을 쌓는 거 이외에 말이다.
그가 외치는 "20대여, 쫄지 마, 상상해 봐. 혁명을!"이 난 왜 하나도 믿기지가 않는지..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지 말고 직접보여주던지. 아니면 좀 도와주던지..
이것은 다시말하지만 내가 그에게 삐쳤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당황스럽겠지만,
나는 청년들에게 위에 나열한 책들보다는
이 책.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에는 일단 위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진정성'이라는 게 있다.
대권을 노리는 정치꾼도 아니고,
교수가 되고싶은 지식인도 아니고,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대부터 80대까지의 평범한 저자들이 '노인과 나이듦'이라는 주제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획이 참 잘됐다)
글을 읽고 있으면..나도 같이 늙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필독서를 읽느라...
혁명을 부르짖는 책을 읽느라...
눈에 보이지 않던 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10대가 보는 할머니..할아버지
20대가 보는 할머니..할아버지
30대가 보는 어머니..아버지
40대가 보는 어머니..아버지
50대가 보는 어머니..아버지
60대가 보는 나..친구들
70대가 보는 나..친구들
80대가 보는 나..
뜬금없이
난생처음으로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게 됐다.
이 책의 힘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 뭐해?"
"응? 노인정에서 고스톱 쳐"
"ㅋㅋ많이 땄어?"
"따면 뭘해~ 이 돈으로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고 그러는거지~. 설에 올거지?"
"응, 할머니가 해주는 반숙 계란 먹으러 가야지~"
이제는 이도 얼마 안 남으신 외할머니의 함박웃음이 보이는 듯 하다.
난생 처음 느끼는 기분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이상하게 내가 힘이 솟았다.
이 책을 다른 모든 슈퍼스타들의 잘난 책들 보다 위에다 놓는 이유다.
'출판사도 읽는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바타!! 훌루루루루, 쌰아아~ (0) | 2010/02/05 |
|---|---|
| 나비족의 촉수, 인간의 기록 (0) | 2010/02/03 |
| 영화 '아바타'와 피터마쓰의 'Crude World' (0) | 2010/02/03 |
| [신간브리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外 (1) | 2010/02/01 |
| [청춘의 독서] '책'을 내세우기. (0) | 2010/01/26 |
| 88만원세대의 호주머니를 노려라 (0) | 2010/01/26 |
TAG 88만원세대,
고스톱,
고영,
꿈꾸는터,
꿈꾸는터추천도서,
노년,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노인,
누름돌,
대학 필독서,
백현모,
변희재,
부자아빠가난한아빠,
생각의나무,
아고라에선리더십,
어사연,
우석훈,
유시민,
이어령,
인문학,
인문학특강,
전병길,
젊음,
젊음의탄생,
청년,
청년 필독서,
청년창업,
청춘,
청춘의 독서,
추천도서,
추천도서목록,
필독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