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과 악함을 솔직하게 드러낸 그의 일기장때문에… | ||||||
| 윤치호에 푹 빠진 키노시타 타카오 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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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흔쾌히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찾은 곳이 숭실대 기독교학과였다. 윤치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학’을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지도교수인 박정신 교수는 <윤치호 일기>의 일부를 번역하기도 한 터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키노시타 씨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됐다. 정확히 4년 전의 일이다. 지도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일본인 할아버지가 와서는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없기에 다른 큰 학교의 교수님을 소개해줬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는지 거절을 당해서 다시 돌아왔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공부하자고 했죠.” 4년이 지난 지금, 키노시타 씨는 올 8월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신민회에 대한 연구로,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는 큰 성과를 냈다.(박스기사 참조)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자취방을 찾았다. “여름이라 방에 벌레가 많습니다.”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윤치호 일기>는 권당 약 300~350쪽 분량으로 총 11권이다.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은 물론,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 신앙에 대한 고민이 발견된다. 한문, 한글, 영문으로 되어 있는 그의 일기는 현재 3권까지만 번역되어 있다. 자신만 아는 암호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일기 전체를 읽지 않고는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윤치호 연구가 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다. 일부 연구자들이 확인되지도 않은 그의 ‘자결설’을 사실인 것처럼 적어 유포한 게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현실이다.
키노시타 씨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모두 윤치호 때문이다. 윤치호를 통해 접한 기독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직접 한국에 와서 본 기독교의 모습은 어땠나요? 그는 이번 여름, 일본에 돌아가 <윤치호 일기> 일본어 완역본 출판 작업에 들어간다. 유명 출판사와의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완역본이 나오게 됐다. 키노시타 타카오 씨의 20여 년 열정이 일궈낸 결과다.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정체된 한글 완역본 출판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키노시타 씨는 자신이 윤치호를 접하고,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윤치호가 만났던 그 하나님이 인도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아직 ‘기독교인’이 아니다. ‘믿음’을 결단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게 많다. 담배도 그중에 하나라는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헤어질 때 이렇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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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교과서 바꿀 충격적이고 치밀한 연구
<윤치호 일기>는 1883년 1월 1일에 시작해 1943년 10월 7일에 끝나는 60년의 긴 기록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1906년 7월 4일부터 1915년 12월 31일에 이르는 약 9년 반 동안에는 어떠한 기록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 기간의 정중앙에 바로 ‘105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연구함으로써 일기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게 키노시타 타카오 씨의 목적이었다.
논문 제목은 ‘105인 사건과 청년학우회 연구’. 지금까지의 신민회 연구가 회고록이나 당시의 경찰, 검찰의 자료를 기준으로 진행되었다면, 키노시타 씨는 여기에 복심법원 공판경위서나 일본 측 자료를 이용해 더욱 객관적인 신민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결론적으로 신민회는 ‘105인 사건’을 날조하기 위해 쿠니토모 및 총독부가 ‘청년학우회’에 덧씌운 이름이었음을 밝혀낸다. 사회 참여적인 평신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청년학우회가 신민회의 원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정설로 굳어 국사 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1907년 조직된 거대한 항일 비밀 결사’라는 표현과 회원 수가 800여 명이었다는 등의 설명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신민회 연구의 권위자를 비롯해, 이 논문의 심사를 맡은 외부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키노시타 씨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학술대회와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지도교수인 박정신 교수는 “한국인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일본인이 직접 찾아와 연구해주어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권정 경희대 교수도 “충격적이면서도 치밀한 연구”라며 “연구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논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글·인터뷰 / 이범진 편집장
키노시타 타카오씨의 논문은 꿈꾸는터에서 곧 출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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