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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악함을 솔직하게 드러낸 그의 일기장때문에…
윤치호에 푹 빠진 키노시타 타카오 씨


“한국에는 윤치호와 관련된 기적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것을 알고도 일기를 공개한 유가족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방대한 자료를 윤치호가 ‘친일파’임을 밝히는 데만 사용한 한국학계이죠.”


키노시타 타카오 ⓒ김승범

 
도쿄의 한 도립고등학교에서 40년간 영어를 가르쳤던 키노시타 타카오(65)씨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윤치호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일상에 지친 그에게 윤치호가 남긴 일기 11권은 일종의 은신처였다. 잠들기 전에 한두 시간씩 일기를 읽고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은퇴 후, 윤치호에 대해 더 제대로 알고 싶어 한국에 왔다. 공부할 곳을 찾아다녔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흔쾌히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찾은 곳이 숭실대 기독교학과였다. 윤치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학’을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지도교수인 박정신 교수는 <윤치호 일기>의 일부를 번역하기도 한 터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키노시타 씨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됐다. 정확히 4년 전의 일이다.

지도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일본인 할아버지가 와서는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없기에 다른 큰 학교의 교수님을 소개해줬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는지 거절을 당해서 다시 돌아왔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공부하자고 했죠.”

4년이 지난 지금, 키노시타 씨는 올 8월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신민회에 대한 연구로,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는 큰 성과를 냈다.(박스기사 참조)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자취방을 찾았다.

“여름이라 방에 벌레가 많습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다. 젊은 시절부터 한국어에 관심이 많아, 소설을 즐겨 읽었다. 윤치호와의 인연도 광화문 서점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윤치호 일기> 국역본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키노시타 타카오 ⓒ김승범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왜 하필이면 윤치호였나요? 그는 ‘친일파’ 아닌가요?
“윤치호를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너무 분명했어요. 친일파에 대해서 왜 연구까지 하느냐는 거였죠. 한국에는 윤치호와 관련된 기적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것을 알면서도 일기를 공개한 유가족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방대한 자료를 윤치호가 ‘친일파’임을 밝히는 데만 사용한 한국학계이죠.”

<윤치호 일기>는 권당 약 300~350쪽 분량으로 총 11권이다.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은 물론,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 신앙에 대한 고민이 발견된다. 한문, 한글, 영문으로 되어 있는 그의 일기는 현재 3권까지만 번역되어 있다. 자신만 아는 암호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일기 전체를 읽지 않고는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윤치호 연구가 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다. 일부 연구자들이 확인되지도 않은 그의 ‘자결설’을 사실인 것처럼 적어 유포한 게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현실이다.

윤치호가 기독교인으로서, 조선의 회복과 근대화를 꿈꾼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후반으로 가면서 ‘노골적인’ 친일을 보였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추앙했다는 평가도 있고요.
“윤치호는 당시 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조선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국 학자들이 윤치호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나쁜 예로 언급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나 사실 당시 일본 측이 느끼는 존재감을 고려하면 그만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스케일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일제가 사회 참여적인 기독교 세력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꾸민 ‘105인 사건’에서도 결국 유일한 희생자는 윤치호 한 명뿐이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의 윤치호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가 무조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에 저는 한국에서 윤치호 전도사가 되려고 합니다.”

키노시타 타카오 ⓒ김승범



키노시타 씨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모두 윤치호 때문이다. 윤치호를 통해 접한 기독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윤치호는 자신의 약함과 추악함을 일기에 그대로 적어나갔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요.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하나님 앞에 서요. 그런 진실한 모습이 다 일기에 쓰여 있어요. 기독교가 이처럼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것을 용서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종교라면, 누구나 믿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약하고 못된 자신을 다 털어놓는 그의 일기는 저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 직접 한국에 와서 본 기독교의 모습은 어땠나요?
“목사님들이 모두 말끔한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부르주아의 종교가 아닌가, 지식인들의 종교가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고요. 여기저기 많은 교회를 소개받아 다녀봤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네요.”

그는 이번 여름, 일본에 돌아가 <윤치호 일기> 일본어 완역본 출판 작업에 들어간다. 유명 출판사와의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완역본이 나오게 됐다. 키노시타 타카오 씨의 20여 년 열정이 일궈낸 결과다.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정체된 한글 완역본 출판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키노시타 씨는 자신이 윤치호를 접하고,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윤치호가 만났던 그 하나님이 인도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아직 ‘기독교인’이 아니다. ‘믿음’을 결단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게 많다. 담배도 그중에 하나라는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헤어질 때 이렇게 인사한다.

“다음에 올 때는 내가 ‘기독교인’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쉽게 믿고, 쉽게 버리는 이 시대에, 그의 오랜 고민과 갈등을 응원한다.


※ 윤치호는 누구?
18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1897년 서재필, 이상재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1989년 제2대 독립협회 회장이 되었다. <독립신문> 사장과 만민공동회 회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1911년 105인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친일행위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친일파’로 낙인찍혔다.



 

 

국사 교과서 바꿀 충격적이고 치밀한 연구

<윤치호 일기>는 1883년 1월 1일에 시작해 1943년 10월 7일에 끝나는 60년의 긴 기록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1906년 7월 4일부터 1915년 12월 31일에 이르는 약 9년 반 동안에는 어떠한 기록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 기간의 정중앙에 바로 ‘105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연구함으로써 일기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게 키노시타 타카오 씨의 목적이었다.

논문 제목은 ‘105인 사건과 청년학우회 연구’. 지금까지의 신민회 연구가 회고록이나 당시의 경찰, 검찰의 자료를 기준으로 진행되었다면, 키노시타 씨는 여기에 복심법원 공판경위서나 일본 측 자료를 이용해 더욱 객관적인 신민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결론적으로 신민회는 ‘105인 사건’을 날조하기 위해 쿠니토모 및 총독부가 ‘청년학우회’에 덧씌운 이름이었음을 밝혀낸다. 사회 참여적인 평신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청년학우회가 신민회의 원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정설로 굳어 국사 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1907년 조직된 거대한 항일 비밀 결사’라는 표현과 회원 수가 800여 명이었다는 등의 설명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신민회 연구의 권위자를 비롯해, 이 논문의 심사를 맡은 외부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키노시타 씨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학술대회와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지도교수인 박정신 교수는 “한국인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일본인이 직접 찾아와 연구해주어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권정 경희대 교수도 “충격적이면서도 치밀한 연구”라며 “연구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논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글·인터뷰 / 이범진 편집장
키노시타 타카오씨의 논문은 꿈꾸는터에서 곧 출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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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학력인증!

왓비컴즈의 커밍아웃!

네이버의 타진요 카페 폐쇄!

 

일련의 사건들이 일면서 언론과 여론의 방향이 '불쌍한 타블로'

'왓비컴즈를 용서하지마라', '뻔뻔스러운 왓비컴즈와 타진요' 등등

"그동안 타블로와 가족들이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ㅠㅠ" 따위의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나는 별로 관심없지만,

개인적으로 MBC스페셜을 본후 2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성적표에

왜 영어와 관련된 수업보다 기계쪽 수업을 더 많이 들었느냐는 것이다.

정말 대니얼 리라는 다른과 학생의 학적부를 해캥한 것일까?

이건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라 일단 뒤로 미룬다.

 

백만보 양보해서 기계를 좋아해서라고 치자.

 

문제는 울프 교수와의 조우였다.

울프 교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의 성적표에는 울프 교수의 수업도 없단다.

 

타블로의 저서 '당신의 조각들'은

지금도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울프 교수와의 이야기를 활용해 광고되어지고 있다.

내용인 즉 울프교수가 타블로를 조교수로 있으라고 붙잡았다는 이야기와

그에게 문학상 같은 것을 받았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그런 울프가 MBC 스페셜에서는

타블로라는 최우수 학생을 전혀 모르고,

행정직원의 말을 인용해서 그럴 수 있다라고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고 있다.

 

왈칼 끌어안고 눈물을 쏟는 장면을 기대했던 나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나오지 않았다는 논증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타블로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중이다.

 

이게 지금 출판사의 잘못인가?

나도 출판사를 하고 있지만,

저런 광고문구는 저자인 타블로에게서 뽑아낸 것이 확실하다.

편집장들은 허위광고에 가까운 말(박사수료->'박사' 표기 따위)을 지어내긴 하지만

없는 말을 만들어내진 않는다.

 

이외에도 '거짓말' 목록은 많다.

무릎팍도사에서 이야기했던 클린턴의 딸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졸업연도가 맞지 않고,

여교수와 교제끝에 그 성적이 A+를 받았다던 이야기 등...

군대를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이중국적취득을 거쳐 캐나다 국적을 가진 일 등

 

그의 학력이 인증되었다고 해서,

지금 거의 모든 언론은 그가 했던 거짓말까지도 진실로 여기는 분위기이며,

캐나다 국적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타블로의 스탠포드 졸업이 확실하다고 해서,

그가 뿌려놓은 거짓말 목록이 진실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의 거짓말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그의 학력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지

할일없는 악플러들이 괜히 아니꼬아서 잡고 늘어진 건 아니란 말이다.

 

타블로는

명문대를 졸업했건 안했건과 아무 상관없이..

연예인으로서

대중과 시청자를 상대로 거짓말한 부분이 있다면

고해성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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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이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유일한 국제이슈 전문제 유엔크로니클(UN Chronicle)의 한국어판이 드디어 출간됐다.

특히 이 분야에 열정이 있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번역, 기획, 마케팅 등을 직접 맡았다. 이는 전세계에서 영어, 불어, 서어에 이어 4번째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교보문고, YES24 등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특히 온라인 교보문고에서는 E-Book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유엔크로니클은 1년에 4회씩 발행되는 계간지 형식이며, 하나의 주제를 갖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전달한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의 주제는 '여성 임파워링'으로, 여성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여성의 활동, 지속되는 문제점, 앞으로의 개선 방향 등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논술이나 시사지식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정가는 6,000원(올칼라)이다.

박수길 유엔세계협회연맹 회장은 "전 세계에 어떤 이슈가 있으며, 이를 위해 전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기 원한다면 유엔크로니클을 읽어보라"고 말했다.

책소개 바로가기
http://www.yes24.com/24/goods/4259781?scode=032&s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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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들 이중성, 어떻게 극복할까?
『내가 사랑하는 수업』낸 안양 백영고 김태현 선생님 인터뷰
 
기독교적 수업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미션 스쿨에 다닐 때에는 딱 두 부류의 선생님들이 있었다. 갑자기 수업을 하다가 눈동자가 맑아지면서 간증을 쏟아내시며 전도하던 선생님과 그저 수업에만 열중하며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게 기독교 수업이라고 생각하던 선생님 부류 말이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어진 수업을 들어야 할 학생들의 권리를 생각할 때면 그리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두 번째 부류의 선생님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선생님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미션스쿨’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 더군다나 학교 채플시간에 가끔 ‘신실한’ 모습이라도 보여주실 때면 ‘이중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정작 혼란스러웠던 사람은 선생님들 그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기독교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 줄, 최근 ‘내가 사랑하는 수업’(좋은씨앗 펴냄)을 출간한 안양 백영고등학교 김태현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평소 수업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해왔다. 이미 이 ‘바닥’에서는 스타 강사로 꼽히는 그를 찾아 직접 학교로 향했다.

10년 만에 가보는 고등학교, “만남과 사귐”이라는 급훈이 우리를 반겼다. 

 



▲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있다.    © 윤동혁
 
● 책에 공을 많이 들이신 것 같다. 만들게 된 계기는?
올해 2010년에 기독교사대회가 있었어요. 그 대회에 맞춰서 책을 내게 됐어요. 제가 주제강사였거든요. 요즘 수업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요. 수업이 굉장히 화두인데, 기독교사들도 약간 이원론에 빠진 그런 게 있었어요. 기독교사들이 학교 수업에서 직접적으로 전도하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죠. 반면 학급경영을 잘 하는 게 곧 전도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그러나 정작 수업에서는 기독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양쪽으로 치우쳐 져서는 안 되죠.

그러다가, 이제 1998년부터 기독교사 운동이 시작됐는데, 이 운동이 10년을 거쳐오면서, 우리 기독 교사들이 기독성을 어디서 발휘할 것인가. 말하자면, 교육 정책, 수업, 교육과정, 학교만들기 등 이런 것에 관심을 쏟게 됐죠.

다행히 제가 이제 좋은 교사 저널에 4년 넘게 ‘김태현의 기독교적으로 수업하기’라고 해서, 연재를 했죠. 이것이 모여서 이번 책이 나온 거죠.

 
기독교 정신은 수업속에 녹아들게,
복음과 수업 통합하는 실험
음악은 물론, 수학도 가능


● 그렇다면 ‘기독교적 수업’이란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사실 긴장이 있잖아요. 공교육에서의 기독교적 수업이라는 것이 뭘까? 수업 잘하고 애들 따로 모아서 전도하는 것이 기독교 수업인가?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접근을 했죠. 교과 지식 자체가 좀 재해석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니깐,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만들었을 때는, 의미와 목적이 있는데, 아시다시피 교과서에 기록된 진술은 굉장히 객관적인 정보의 나열이잖아요.

예를 들면, 직유법과 은유법을 우리가 배운다면, ‘~처럼, ~듯이’가 들어가면 직유법이고, 은유법은 ‘내 마음=호수’ 이런 식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어가 가지는 의미와 목적이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언어 형식 중에 수사법을 준 이유가 더 깊은 표현을 하기 위해서 준 것이거든요. 깊게 만나라고, 예를 들면 “우리 기자님은 장동건처럼 멋있어요” 할 때 장동건이라는 매개언어가 이 사람의 속성을 더 구체화 시켜주거든요. 이렇게 수사기법을 사용하게 되면, 의미가 이질적이지만, 거기서 생각을 하게 되고 의미를 풍요롭게 만들게 하는 그런 수사기능이 있는데, 그런 의미들은 다 제거되어 있죠. 제거되어 있으니깐 기독 교사는 교과 지식 속에 있는 숨은 의미들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교과서 기술 되지 않은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복원해줘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기독교사란 수업 영역에서 얘기를 했을 때는 창조세계의 비평가여야 한다는 거죠. 누군가 어떤 현상을 비평해줄때,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될 수 있거든요. 학교 수업이 왜 지루하냐, 바로 이거거든요. 교과서 속의 지식이 의미와 목적이 상실되어 있거든요. 지식의 파편화라고 할까요. 게다가 여기에 ‘입시’가 들어오는 거예요. 외우고 저장하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도약을 못하고 죽은 지식만 저장하는 거예요.


● 수업 중에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요?
창세기1장을 보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얘기 하고 있거든요. 기독교사는 수업 속에서 그 기쁨을 맛보게 하는 거예요. 그게 일반 은총 가운데 가능하잖아요. 얼마든지 공교육에서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맛보게 할 수가 있는 거거든요.

1차적으로 기독교사는 수업시간에 그런 창조의 기쁨, 세계의 의미와 목적 그러면서 배움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 이런 것이 기독교사가 수업속에서 발휘해야할 영성이라는 거죠.

그리고 나서, 이제 수업 속에서 교과 속에서 아이들에게 영적인 질문을 던질 수 가 있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영적인 공간으로 초대를 하는 거죠. 그래서 아침 기도 모임이라던가 점심 기도 모임이라던가 아님 지역 교회 예배로 초청을 해서 아이들에게 더 강력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게 되는거죠.


● 수업 속에 거의 녹아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네요.
기독교 학교가 문제가 뭐냐면, 겉으로는 예배를 드리고 그 수업의 교육 과정과 철학들을 완전히 기독교 교리를 잣대로 평가하고, 그러면서 기독교 학교가 서울대 몇 명 갔다느니 뭐니 하면서 현수막은 제일 먼저 걸어요. 이게 과연 기독교 학교인가 하는 거죠. 그렇지 않다는거죠. 복음과 수업을 통합하는 시도가 필요하고 절실하죠.
 



▲  굳이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교육이란 것 자체가 창조세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 윤동혁
 
●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객관적이어야 할 수업속에서 기독교 정신이 발현된다?
수업이라는 것을 교육 차원에서 본다면, 창조세계를 복원한다는 거죠.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세계 속에 있는 의미를 복원 시켜주는데 목적을 둔다는 거죠. 그게 교육으로서의 수업인 거죠. 그니깐,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잖아요. 그 창조세계의 의미를 가르친다는 거죠. 그건 굳이 중생의 경험이 없더라도 우리가 얼마든지, 일반 은총 가운데 아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거죠. 그게 이제 교육으로서의 수업인거죠.

선교로서의 수업은 창조세계의 의미 목적은 부차적인 것이고, 일단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이죠. 수업에 들어가셔서 일단 수업은 기본적으로 하고, 그리고 나서 수업시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으로써 생각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시죠.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약간 배타주의로 흐를 수 있죠. 수업시간에 기도를 한다던가, 찬양을 한다던가 하는 아니면 수업을 하다가 책 덮어 한담에 복음을 전하시는.. 그러시는 선생님들 있죠.

제 입장은 이 두가지가 통합되어야 한다는 입장인거죠. 그런데 통합이지만, 제 기본추는 교육으로서의 수업에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소통형 수업으로 교육을 목적으로 하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관점을 재구성하는 거죠. 일반화된 언어로요. ^^


● 구체적으로 기독교적 수업은 학습point가 다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인데요. 학습자 중심의 수업은 이제, 진리는 상대적인 것으로, 진리는 학생들이 구성하는 그 지식이 진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구성주의라고 하죠. 개인의 주관화된 느낌과 경험을 얘기하죠. 그래서 학습자 중심의 수업은 어떤 가치나 절대진리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을 꺼려하죠. 교사는 안내자로서의 역할만 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구성하게끔 창의적인 발문 토의 토론 학습 이런 것들을 하는 거죠. 물론 그렇게 하는 과정은 중요한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좀 문제가 되죠. 우리는 진리가 있잖아요. 애들이 스스로 절대 진리에 대해서 상대화시키다 보면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대답이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학습자 중심의 교육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해요. 그저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는거죠.

그런데 기독교 수업은 진리가 있어요. 그 진리를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인격적으로 알아가게끔 하느냐 하는 거죠. 학생들의 보는 관점에서도 학습자 중심의 교육은 학생들을 신으로 보거든요. 전능자로 보는 거죠. 너는 할 수가 있고, 깨우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기독교적인 교육에서의 관점은 ‘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신적인 부분을 가졌으나, 타락한 존재라는 거죠. 그러면 타락한 부분을 올려와야 한다는 거죠.


● 수업 중에 영성의 공간을 만드신다는 말씀과 이어지네요. ‘나, 너, 사랑,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요. 실제로 이렇게 영성의 공간을 만들었을 때, 하나님을 고백하는 혹은 하나님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었나요?
수업에서는 하나님을 명시적으로 알리기가 힘들죠. 중요한 것은 일반은총 가운데 있는 부분만 일단 이야기 하는거죠. 일반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데 거기서 어떤 지점이 있냐면 영성이 있는 지점을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을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일단 지식이라는 것이 그냥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실재가 있다. 이거죠. 예를 들면은 우리가 욕을 듣기 좋아하느냐, 아름다운 용어 칭찬 같은 용어를 좋아하느냐 사실 칭찬을 듣기 좋아하거든요. 그 왜그러냐 그거죠. 그것은 인간 본연의 마음 가운데 그것을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 거거든요. 이런 아름다움 같은 가치를 주는 배후자가 있다라는 거죠. 이런 식의 접근을 하는 거예요.

수학을 봐도, 수학에서는 보이는 세계를 기호로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규칙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허수를 만들어야지 풀어지는 문제가 있어요. 이것은 뭘 의미하냐면, 우리가 눈에 보이는 객관적 세계 외에도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세계가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거든요. 이런 식의 접근을 한다는 거죠. 그리고 나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얘기 하기보다는 이것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따로 찾아던 혹은 아침 기도 모임에 나와라 하는 식으로 접근하죠. 수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막 선포하고 그런 자리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세계, 혹은 또 다른 지적인 신, 창조주가 있음을 암시하고 또는 명시적으로 얘기를 하면서 아이들을 계속 내가 섬기고 있는 영적인 곳으로 초대하는 거죠.

그러니깐,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느끼게끔 하는 거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구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거죠. 실제로 우리 아침 모임에 안믿는 애들 많이 와요. 그리고 여름방학 때, 창세기 논술이 있어요. 거기서도 안믿는 애들이 와서 와 신이 있구나 하고 이런걸 인정하는 가는거죠. 고민을 계속 던져주는 거죠.


● 영적인 공간을 마련하는데 있어 환경이 많이 어려운 점이 어떤 것이 있나요?
교육문화죠. 교육의 타락한 문화. 아이들도 참 이중적이예요. 좋은 수업을 원하지만 입시를 또 책임져줘야거든요. 그런데 이제 어느정도는 통합이 돼있어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지혜가 좀 생겼다고 할까요. 기독교적인 수업으로 아이들과 동료교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요. 평가의 문제 동료교사와의 마찰, 학생들의 어떤 불만족스러움 같은 것들이죠. 이런 것들을 해결하는 게 초창기에 문제가 좀 있었죠.

그런데 사실 지금은 가장 기독교적인 수업을 할 때, 가장 좋은 수업이 돼요. 왜냐면 기쁨을 맛보게 하잖아요.  
 


 
● 국어 수업을 담당하고 있어서, 더 유리한 부분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국어에 있어서도 기독교적인 수업은 그 의미를 복원해주는 거예요. 김춘수의 ‘꽃’ 시처럼 이름을 붙여서 의미를 알게 해줘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수학에서도 가능합니다. 직접적이지 않아서 그렇지요. 음악 수업같은 경우 기독교적 수업이 아주 좋습니다. 그동안은 수업시간에 그냥 외웠잖아요. 밝은 노래는 장도 슬픈 노래는 단조, 이거는 뭐냐면 인간이 가지는 본연의 감정이 두 가지가 있다는 거죠. 슬픔과 기쁨. 그런데 그것을 노래로 표현했다는 것은 노래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거든요. 학습된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치유가 되요. 슬플 땐, 치유가 되고 기쁠 땐 기쁨이 온다는 거죠. 그것은 뭐냐면 노래 자체 리듬이 우리 언어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죠. 이런 음악적 리듬이라는 건 누군가가 줬다는 거죠. 학습 받은 결과가 아니라는 거죠. 벌이나 동물들은 음악이 없잖아요. 이렇듯 음악이 가진 의미가 복원이 되죠. ‘즐거운 나의 우리집’을 단순히 외우고 박자 맞추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노래를 어머니께 불러주고 가정에서 부르면서 집의 가치 그 의미를 깨닫는다는 거죠.
모든 세계 속에서 의미들이 있는데, 그 의미들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장 생활에서는 힘든데 교회 가면 좋아해요. 근데 그거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직장 생활도 즐거워야 하거든요. 그것을 알려주는 거죠. 수업시간에는 어떤 곳에서든 의미를 찾을 수 있게요.
올해 냈던 책 ‘큐티로 논술하기’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애들은 큐티와 공부가 연관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큐티 자체가 공부거든요. 애들은 큐티 할 때, 감 오는 것만 하잖아요. 그런데 말씀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말씀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정의해보는 것 그게 언어영역 시험하고 똑같거든요. 논술 영역하고도요. 통합시켜 주는 거죠.
 
 
수업후 하나님 궁금해서
아침 큐티 모임에 참석하는 학생들,
적극적인 소통이 관건


● 수업하시면서, 이 방법에 관해서 확신을 가지실 것 같은데, 기억나시는 구체적인 사례나 반응들이 있다면?
가장 기분 좋았던 소리는 이거예요. 교회 다니는 애들 입장에서는 하나님 주신 언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됐다. 언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서, 언어라는 것이 그냥 내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이 삶 속에서 미치고 있는 영향과 그 의미에 대해서 잘 알게 됐고, 그 언어를 주신 하나님에게 찬양했다라는 이런 고백이 나왔을 때 참 고맙고 의미가 깊었어요.

또 일반 애들한테는 마찬가지죠. 언어라는 것이 참 단순한 도구적인 것이 아니구나, 삶과 문화를 지배하는 그런거구나, 그리고 문학 작품을  볼 때, 단순히 감상 위주의 분석이 아니라 그 사람과 만난다는 것이 뭔지를 알겠다고, 이런 것들을 깨닫는다고 할 때 참 기분이 좋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글 어떤 언어적인 능력이 부각이 되고, 그것을 통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생각을 되거든요. 저는 결국 수업에서 나와의 만남과 너와의 만남, 세계의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기독교적인 앎이라는 것은 좀 달라요. 안다라는 것은 정보를 저장하는 건데, 우리의 앎이라는 것은 ‘야다’ 남녀가 성적으로 정신적으로 연합하는 의미, 인격적인 의미거든요.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라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결단의 소망도 있는 것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우리 수업에서 안다라는 것은 그것을 통한 뭔가의 삶의 변화를 이뤄낸다는 것이거든요. 그런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을 때, 제 수업에 대한 의미들이 많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거죠.


● 그러나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고, 그런 모든 것들을 수업에 적용하기에는 운신의 폭이 좀 좁으실 것 같다. 공립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밖에 나가서는 하고 싶으신 것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대안학교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달라.
그렇죠. 여기는 한계가 있죠. 왜냐면 소통해야 하니까요. 어떤 욕심이 있냐면요. 정말 구속의 영성과 창조의 영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기독 제자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물론 이거는 약간 고지론적인 접근일 수도 있는데, 정말 이 세계를 잘 이끌 수 있을 만한, 영성과 지성과 감성이 충만한, 그래서 앎과 삶이 통합되고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그런 균형잡힌 인재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하고 있는 수업은 좀 답답한 감이 있죠. 이렇게 하려면 통합된 수업이 필요하거든요. 하나님이 이것을 왜 만들었을까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토의하고 그런 것도 필요하죠. 중생을 경험하지 못하고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이 있잖아요. 그런 영적인 비밀들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죠. 그니깐, 교육적인 수업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선교적인 수업도 중요한거죠. 이런 것들으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업하는지 궁금하다. 하나만 예를 들어 달라.
국어 수업 같은 경우에 윤동주의 서시를 통해서, 일반 교사라면 입시 위주에 문제를 푸는 접근을 하겠죠. 그런데 저는 기독교적인 접근을 하죠. 시라는 것은 하나님 주신 산물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계를 노래하고 나와 만나는 산물이라는 거죠.

서시를 딱 보니깐, 윤동주가 하나님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하나님과의 만남을 얘기하는 것 같아요. 고난이 있지만, 끝까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 어떻게 보면 신앙일수도 있거든요. 즉, 서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를 만난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면 우리 애들 가운데서도 이 서시를 통해서 세계를 만나고 나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거든요.

그러고자 하면, 이제 처음으로 윤동주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이 서시가 윤동주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 서시를 썼을 때의 마음을 체험하게 해주는 거죠.

사실 이 시가 2학기 첫 수업이거든요. 이제 이 서시를 가지고 2학기 첫 생활을 시작하는 시로써 너희들이 패러디를 해봐라 하면서 이렇게 연결을 하는 거죠. 그러면 이런 방법이 더 창의적이고 아이들이 서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거죠. 게다가 다행히도 수능 문제에서는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이런 것 같은 의미와 삶의 맥락을 묻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의 사고를 계발하게 되니깐 아이들에게도 더욱 도움이 되는 거죠.

어떤 머리를 빡빡 깍은 아이가 있어요. 이 아이가 서시를 썼어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자기가 “머리를 빡빡 깍았지만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수군거리는 소리에 나는 괴로워 했다. 하지만 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신념을 끝까지 지켜가야겠지. 아직도 다른 아이들은 내 머리를 가지고 수근거린다.”

이런 식으로 썼어요. 그러니깐 이렇게 서시를 통해서 자기와 만난거죠. 자기가 머리를 삭발한 의미를 넣고 시를 통해서 자기와 만난거예요. 이렇듯 시가 가진 본연의 가치가 살아나게 된거죠. 하나님은 이런 수업을 원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주신 시의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를 복원시켰으니깐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영적인 공간으로 초대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겠죠.


● 선생님에게 제자들은 어떤 존재? 제자들은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
하나님의 형상이죠. 동시에 우리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죠. 지도자였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기쁨을 누리는 사람. 저는 약간 좀 선교단체 간사를 해서, 자꾸만 이렇게 제자 양육하려는 의도가 있어요.

그리고 제자들은 열정있는 선생님 그리고 좀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조이메이커, 웃기는 사람이요.
 



▲  결국 자녀의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어요. 좋은 선생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는 사람이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또 부모의 헌신과 사랑이 있어요.     © 윤동혁
 
무상급식 찬성하지만
정치적 이용 안했으면,
학생들 교정위해 '적정' 체벌은 필요
'적정선'은 고민해봐야
 
 
● 요즘 무상급식, 학생 인권 전반적으로 교육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일단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찬성을 하죠. 그 취지가, 불평등에 대한 해소니까요. 그런데 무상급식을 정치적으로 자꾸만 이용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해요. 다만 무상급식만 해결한다고 해서 불평등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학교 복지가 전반적으로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학생 인권은 존중을 해야죠. 그런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과정은 공동체적 합의는 잘 안된 것 같아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히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체벌도 금지해야 하는데, 저는 간단하게 체벌은 해요. 수업시간 말고 담임으로서는 손바닥 한 대 정도는 해요. 그런데, 너무 체벌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체벌에 대한 개념을 좀 재정의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은 하고 있는데, 명확하게 개념을 잡기는 좀 힘들더라고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학생들은 죄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교정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는 생각해봐야겠죠. 예수님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식탁을 뒤집어 엎으셨는데, 그것이 체벌의 정당화는 아니지만요. 물론 체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은 있죠. 일단 기본적인 취지는 찬성을 해요.


● 사실 학원 강의(지식중심·독선·배타적)에 안전감-안도감을 느끼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다. 이들에게 한 말씀.
중요한 것은 공부를 왜 하느냐는 거죠. 기독인들에게요. 공부 속에는 항상 배움의 기쁨이 있어야거든요. 그런데 공부가 기쁘지 않으면 아이들이 욕을 하게 되어 있어요. 왜 욕을 잘하냐면요.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있기 때문이예요. 재미가 없거든요. 기쁨이 없고요. 그런데 그런 온라인 강의들이.. 물론 온라인 강의를 듣기는 들어야 돼요. 그것만 들어서는 안된다는 거죠.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결국 만남과 사귐이거든요. 나와 만나고 너와 만나고 세계를 만나고 하나님과 만나는 그런 관곈데 그런 것이 사라졌을 때, 남은 것은 세속주의 성공주의. 이런 거거든요. 욕망만 남은거죠. 그런데 그런 것이 과연 기독인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기독교인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막아야 한다는 거죠. 학원 강의를 절대 듣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왜 공부를 하느냐의 의미를 묻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고 그 가운데에서 전략적으로 학원 강의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는 거죠.

만약 학원 강의와 온라인 강의만 들은 학생이라면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거죠. 배움이 공부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움이 공부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 가정에서 학생들에게 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가정에서는 일단 거실 앞에 TV를 치워야 해요. 공부를 하라고 해놓고 가장 사람들이 많이 앉는 거실 앞에 TV가 있는 것은 문제가 있죠. TV 속에서 이뤄지는 세계는 거짓의 세계거든요. TV를 보더라도 WHY?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이 프로그램을 보는가 하는 그런 질문이요. 보고 즐기기는 것보다는 생각을 하며 자기가 주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거실에는 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으로, 가정 가운데 건설적인 대화와 토의와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과 부모님들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그런 고차원적인 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유대인들의 밥상머리 공동체의 핵심은 바로 ‘대화’거든요. 진실한 대화. 그런데 오히려 기독인들이 대화를 많이 안하는 것 같아요. 그 대화를 많이 하려면 가정의 문화가 독서의 문화,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나눔을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렇게 가정의 문화를 통해서 아이가 가정에서 충전이 되어야 해요. 사실 가정에서 방전된 아이가 무너진 아이가 학교에서 충전되기는 힘들거든요. 일대 다수잖아요. 결국 자녀의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어요. 좋은 선생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는 사람이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또 부모의 헌신과 사랑이 있어요.

그래서 가정의 문화 아이들을 충전시키는 기독교적인 가정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덧붙여서 무엇보다 제발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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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교보 리모델링, 기독교서적은?
총 진열면적은 줄었지만, 표지까지 노출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책 한눈에
 
리모델링에 들어갔던 광화문 교보문고가 27일 문을 열면서, 기독교 서적이 전보다 더 많이 진열되게 됐다. 이전과 위치(K블록)는 변함이 없지만 진열 스타일에는 크게 변화를 줬다.
 
▲ 이른바 '페이스진열'방식으로 표지 전면 노출을 통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돕는다.     ©뉴스파워

기독교 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다양한 성경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진열대. 기존진열대가 단순히 쌓아놓는 형식이었던 데에 반해, 멀리서도 여러 스타일의 성경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페이스 진열’로 이용자 중심의 도서전시를 하겠다는 광화문점의 새로운 시도다. 도서 표지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다양한 책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독자들에게 책을 고르는 편리함을 더했다.
 
▲  원기둥 진열대. 천주교, 불교 서적들과 공유되는 공간이지만 반 이상이 개신교 서적이다.    ©뉴스파워

새롭게 생긴 원기둥 진열대는 천주교, 불교 서적과 같이 비치되었지만 절반 이상이 기독교 서적으로 기존의 책등만을 노출하던 방식에서 표지 전체를 노출하기 위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종교담당 MD는 “사실 리모델링을 하면서 종교분야 면적은 줄어든 상태”라면서 “진열대 스타일을 바꿈으로써 고객들이 보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오늘이 첫날이라서 아직 기독교 서적이 다 들어온 상태는 아니”라면서 “다음 주정도가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책들이 진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리모델링 후 첫날이었지만 반응은 괜찮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인기 있는 책들은 두 세 권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 남대문교회 최윤호(34)씨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와봤다.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로 바뀐 것 같고 특히 기독교쪽은 신간 소개 코너가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교보문고를 돌아본 소감을 말했다.
 
▲ 도서 검색대가 터치스크린으로 바뀌면서 공간차지를 최소화했다.    ©뉴스파워

한편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약 5개월 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소통하는 미래형 서점’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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